[취재수첩] '김부선 딜레마' 빠진 국토부
“김포·검단 주민만 투표권이 있는 게 아니다. 서부권 광역급행철도(GTX-D) 보완을 위해 기존 GTX 계획이 영향을 받으면 해당 지역의 표심도 움직일 것이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포-부천종합운동장역 노선을 지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정부가 이른바 ‘김부선(김포∼부천)’으로 불리며 서부권 지역 주민의 반발을 사고 있는 GTX-D 노선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치자 ‘또 다른 특혜’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부동산커뮤니티 등에도 “떼쓰면 다 들어주나” “우리 집 앞에도 GTX 좀 깔아달라” “김포 민심을 얻을지 몰라도 국민 신뢰는 잃었다” 등의 비판이 거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2일 ‘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GTX-D 노선을 경기 김포 장기에서 부천종합운동장까지만 연결하기로 했다. 당초 서울 강남 통과를 요구해 왔던 경기도와 인천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실망은 컸다. “김부선이 웬 말이냐”며 촛불시위를 하면서 수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정부는 계획안 보완에 나섰다. GTX-D 열차 중 일부를 건설 중인 GTX-B(인천 송도~남양주 마석) 선로와 공유해 여의도나 용산역까지 연결하는 식이다. 강남 구간을 신설하는 방안도 원론적으로나마 검토 선상에 올려놓고 여론의 ‘간’을 보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공항철도, 지하철 9호선과 중첩돼 비효율적”이라며 “비수도권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감안해도 계획안 수정은 어렵다”던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정책의 일관성이 정치적 셈법 때문에 흔들린다고 우려한다. 실제 정부가 입장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여당 국회의원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선 재검토”를 요구했고, 이낙연 전 대표는 노형욱 국토부 장관에게 전화해 “(4차 철도망 계획 개선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에 몰표를 준 인천 검단·경기 김포·부천의 표심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민 수가 100만 명에 달하는 김포권이 교통수단 부족으로 고통받는 현실은 감안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가 교통시설의 신설과 확충은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만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당장 4차 계획안에서 뒷전으로 밀린 타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도 들고 일어나보자”는 말이 나온다.

국토부는 집값 폭등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 땅 투기 의혹 등으로 이미 국민 신뢰를 크게 잃었다. 14일 취임식에서 “국민의 신뢰는 모든 정책의 바탕”이라고 한 노 장관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