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채무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고해 주목된다. 무디스는 어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과 전망을 ‘Aa2(안정적)’로 유지하면서도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historically high level)에 있고, 이는 장기간 유지해 온 한국의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 이력을 시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펑펑 쓰다가는 조만간 재정이 망가지고, 신용등급도 하락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 메시지다.

무디스가 어떤 곳인가.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직전, 3대 신용평가사 중 맨 먼저 한국의 단기국채 신용등급을 내려 외환위기로 치닫게 한 뼈아픈 기억을 안긴 곳이다. 무디스 발표 직후 한국에선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 외국자본 이탈 등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런 무디스가 ‘신용등급 유지’라는 덕담 사이에 ‘재정규율 테스트’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나랏빚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고가 무디스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 들어 IMF,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회예산정책처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에서 같은 맥락의 우려를 잇따라 내놓은 터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무디스 발표내용을 전하면서 “정부의 위기 대응력과 우수한 회복력을 평가받아 신용등급이 유지됐다”고 자랑부터 앞세웠다. 정작 문제 많은 국가채무에 대해선 “재정안정화 노력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여당에서는 한마디 논평도 없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40%(가 국가채무비율 관리의 마지노선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이후 나라곳간은 민생대책, 일자리 예산, 코로나 대응 등 온갖 ‘그럴듯한’ 이유들로 활짝 열렸다. 그 결과가 현 정부 들어 300조원이나 늘어난 국가부채요, 안팎으로 쏟아지는 나랏빚 경고다. 이런데도 유력 대선주자라는 정치인들은 더 퍼주기 경쟁을 벌이는 게 현실이다.

재정은 국가의 최후 보루다. 재정 건전성이 무너지는 순간 언제 또다시 ‘무디스의 악몽’이 재연될지 모른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후세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 24년 전 ‘펀더멘털은 양호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사실상 국가부도를 자초했던 어리석음을 벌써 다 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