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는 순간 타락은 시작된다. 그게 인간이다. 35세에 피렌체 최고 공직에 오른 단테도 그랬다. “인생 최전성기에 문득 뒤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첫 문장으로 《신곡》을 써내려간 이유다.

취임 4주년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연설에선 짙은 어둠에 갈 길 모르는 권력자의 당혹스러움이 짙게 느껴졌다. 자기최면을 걸듯 자화자찬으로 일관했지만, 태연함을 가장한 눈빛은 회한과 상실감에 떨렸다. ‘잘되고 있다’ ‘믿어달라’는 메시지를 반복했지만 허공을 갈랐다. “청와대 인사검증은 원래 불완전” “백신 지연은 재원 부족 탓”이라며 ‘아무 말’을 쏟아내는 장면에선 가늠하기 힘든 깊은 불안이 배어났다.
모순된 논리로 '무오류' 강변
문 대통령은 ‘자기 논거의 절대화’라는 특유의 배타적 화법을 취임 초부터 이어왔다. 실망스럽게도 이번 담화는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 태도가 여전함을 확인시켰다. 나아가 이런 태도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요지부동일 것임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설과 기자회견 전반에 과장 및 축소, 왜곡, 악마화 같은 온갖 ‘선동기술’이 총동원된 점이 그 증좌다.

담화는 사실관계의 과장과 선택적 취사로 넘쳤다. 허울뿐인 몇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연 것을 두고 “평화가 유지됐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핵 고도화 시간을 벌어주는 최악의 결과를 불렀음에도, 만남 자체를 과대포장하며 본질을 호도했다. 불리한 팩트에는 축소로 대응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참패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엄중한 심판”으로 규정한 장면에서 ‘기술’이 시전됐다. 정권의 오만·부패·무능에 대한 민심의 분노라는 핵심을 흐리기 위해 그토록 인색하던 실패를 인정하고 “아프다”며 엄살을 부린 셈이다.

과장·축소로 안 될 때는 왜곡이 동원됐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으로 분배지표가 개선됐지만 코로나 탓에 물거품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분배지표가 악화일로였다는 사실에 명백히 배치된다. 논리가 궁하면 ‘악마화’ 카드도 꺼내들었다. 해외에서도 비판하는 대북전단금지법의 가치 전도에 저항하는 이들을 오히려 ‘법치와 평화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무모한 정당성 인정 투쟁 접어야
문재인 정부는 ‘3기 진보 정부’를 자처한다. 하지만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념적 도그마가 강했지만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있었다. 그렇기에 결정적 순간에는 경직된 신념 대신 국익을 택했다.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착수하고,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배경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작동방식은 딴판이다. 일자리, 서민경제, 청년, 양극화, 부동산, 북핵 등 현안이 모두 최악으로 치닫는 데도 잘못 꿴 정책을 임기 끝까지 밀어붙이겠노라 선언했다. 실패를 입증하는 수많은 데이터와 현장 절규를 외면하는 이유는 재집권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있어서다.

이 정부는 ‘현상 유지’라는 작은 목표에도 가용자원 총동원을 서슴지 않는다. 나라 곳간이야 어찌 되든 재정 퍼붓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선택적 정보와 왜곡으로 정책 실패를 은폐하는 일도 잦다. 전(前) 정권, 전전(前前) 정권까지 소환해 책임을 떠넘기고 정당성을 강변한다. 사실을 도그마로 대체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구원의 서사시 《신곡》은 어둠에서 별의 세계로 나가기 위한 키워드로 희망과 의지를 말했다. “이 어두운 숲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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