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어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은 대통령과 국민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쩌면 이토록 다를 수 있는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며 정책 실패를 사실상 인정했지만 다른 국정분야에 대해선 낙관론과 긍정론을 쏟아내며 남은 임기 중 큰 방향의 정책 전환이 없을 것임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전쟁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11월 집단면역 달성 목표를 앞당길 것”, “K방역이 세계의 모범” 등을 언급했다. 당장 백신 부족으로 이달 말까지 ‘접종 공백’이 불가피하고, 백신접종률이 이제 7%를 간신히 넘긴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 ‘11월 집단면역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국민이 10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해외에서 한국을 방역 모범국으로 꼽은 사례도 거의 없다.

“모든 경제지표가 견고한 회복 흐름”이라는 발언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수출이 늘고 생산·소비도 회복세지만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일자리 상황은 한겨울이다. 대통령은 코로나가 고용 악화의 주범처럼 이야기했지만, 한국은행조차 “코로나 영향은 미미하며 노동시장 경직화, 정부의 직접고용 강화 등이 실업률을 끌어올린다”는 분석을 최근 내놨을 정도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분배지표가 개선됐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 배율이 4년간 악화됐다. 비정규직이 4년간 94만5000명 늘어난 반면 정규직은 24만2000명 줄었다. 이런 지표는 안 보이는 것인가. 외교·안보와 관련, “미국의 대북정책이 초기부터 한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정립됐고 북한 반발이 대화를 거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발언에선 할 말을 잃게 된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부적격 논란이 일고 있는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야당이 반대한다고 검증 실패라고 생각 않는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능력은 제쳐두고 흠결만 따지는 청문회는 곤란하다”는 것이어서, 국민 눈높이와 거리가 멀다. 그러면서 국민 통합과 관련한 가시적 정책변화나 통합 비전 제시도 없었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선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했을 뿐이다. 전직 대통령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해서는 ‘형평성’ ‘국민적 공감대’ 등을 거론하며 여전히 소극적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보궐선거에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는 대통령 표현대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을 빼면 국민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경제와 외교·안보 등 주요 정책을 바꿀 의지는 안 보이고, 자화자찬과 자신감, 정권에 유리한 지표만 나열하다 끝난 격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정말 부동산만 제외하면 ‘만사 OK’라는 생각인가. 1년밖에 안 남은 천금 같은 시간을 또 환상 속에서 보내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