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건설 사업에 정부가 뒤늦게 지원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반도체 대전이 격화하는 데다, 메모리 등 한국이 앞선 분야에서도 초격차 전략이 위협받는 현실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전기·수도 같은 기반시설 지원에 정부가 적극 나서겠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지원 호소에 정부가 2년 이상 무관심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SK하이닉스라는 ‘개별 기업’의, 그것도 ‘대기업’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특혜 시비’가 예상되는 사안인 데다, 그것도 수도권의 대규모 투자였다. 이 바람에 120조원이 투자되고, 중견 협력업체 50여 곳의 활로가 달렸으며, 1만7000개가 넘는 고급 일자리가 생기는 사업이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대기업’과 ‘수도권’이 겹치면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라도 상식과 합리, 이성적 논의는 끼어들 여지조차 없어지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의 수도권 투자는 한국의 정치·행정에선 거의 ‘금기’처럼 돼버린 탓이다. 이번 사업도 반도체 전쟁 속에 ‘반도체=안보’라는 다급한 현실이 아니었다면 하세월이었을 게 뻔하다.

이번 주에 나올 ‘K반도체밸리 육성 종합전략’에 산업계 숙원에 대한 전향적 해법이 두루 담기길 바란다. 상수도와 송전시설 건설도 필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허가 등 행정절차의 신속·간소화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공장은 부지 확정에서 가동까지 23개월, 중국 시안 공장은 25개월밖에 안 걸렸다. 이제야 시작된 용인 클러스터는 준공까지 과연 얼마나 걸릴까.

차제에 ‘수도권 입지규제’라는 ‘터부’를 공론화에 부쳐 전향적으로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시화·집적화·현대화는 피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다. 서울은 상하이 베이징 도쿄 홍콩 등과 경쟁하고, 좋든 싫든 수도권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 경쟁력이 돼버렸다. 젊은 세대와 전문인력이 수도권을 좀체 벗어나지 않으려는 세태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대안은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전략에서 찾아야 한다. 40년 묵은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풀되, 지역별 거점 육성지역을 선정해 재정 지원을 확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방소멸론이 갈수록 커지는 판에, 국회부터 기껏 ‘고향세’나 만들겠다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특별회계 등을 통한 지역으로의 예산지원 확대를 함께 추진하는 ‘빅딜’을 논의 못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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