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기본소득 주장 난무에
전직 관료들 정면 문제제기
경제이념 논쟁 본격 시작됐다

정종태 편집국 부국장
[정종태 칼럼] 기본소득에 맞선 OB 관료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가장 핫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기본소득이다. 예견된 것이지만, 논쟁은 가히 백가쟁명 수준이다. 여권 최고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맨 먼저 치고 나와 본인의 슬로건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주제로 박람회까지 열어 분위기를 달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 석학들을 지원사격에 동원하는 걸 보고 이 지사의 대선 마케팅 역시 ‘대통령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화상으로 출연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세계적 모범사례”라고 치켜세우는 대목에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지사가 불 지핀 기본소득 논쟁에 다른 대선주자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기본소득을 외면하면 마치 경쟁에서 낙오될 것이란 두려움이라도 있는 듯한 분위기다. 이낙연, 정세균 등 다른 주자들은 이 지사의 패에 말리지 않으려는 듯, 각기 다른 용어를 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기본소득의 한 묶음이다. 본질은 같은데 ‘이재명 따라하기’로 비칠까봐 겉모양만 바꾼 것일 뿐이다. ‘기본소득을 장악한 자, 대선을 거머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닐 정도다.

이런 타이밍에 주목할 책이 하나 나왔다. 내로라하는 전직 경제관료 다섯 명이 쓴 책 《경제정책 어젠다 2022》다. 변양호(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임종룡(전 금융위원장), 이석준(전 국무조정실장), 김낙회(전 관세청장), 최상목(전 기획재정부 1차관) 등 이름만 들어도 관료 세계에서는 ‘엄지척’ 할 만한 인물들이다.

책은 이번 대선의 화두로 등장할 공정·자유·평등을 다루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했다. 대선 1년을 앞두고 포퓰리즘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고, 무엇이 다음 정부의 핵심 아젠다가 돼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제시했는데, 읽는 내내 국가를 향한 소신 있는 관료들의 진언문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기본소득이 애당초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 정책이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덩치만 커지고 효율이 낮은 복지제도를 구조조정하는 대신 현금 지급으로 단순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한국으로 수입되면서 기존 복지제도 구조조정이라는 전제는 사라지고, 추가로 현금수당을 얹어주자는 좌파들의 구호로 변질됐다.

전직 관료들이 대안으로 던진 ‘부(負)의 소득세제(Negative Income Tax)’는 진지하게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세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일정 소득 이하에는 마이너스 소득세(보조금)를 지급하고,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는 누진 과세를 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커지게 하자는 개념이다.

소득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지원하자는 좌파의 기본소득보다 효율성이 높고, 개인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우파 일각에서 제기되는 안심소득보다 제도 운용상 투명성이 뛰어나다. 이들은 지난 1년간 머리를 맞댄 결과 부의 소득세제를 한국 현실에 맞게 구현시킬 세부 실행방안과 소요 재원, 재원마련 방안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러면서 “재원확보 방안을 포함하지 않은 어떤 복지지출 확대 논의도 의미가 없다. 또 다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원칙 없는 기본소득 논의를 경계했다.

이 책은 관료의 무기력증이 팽배한 요즘, 경제관료 역할이 뭔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의미도 크다. 침묵하는 후배 관료들에 대한 용기 있는 선배 관료들의 일침이기도 하다.

한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정책을 30년 넘게 고민했는데도, 막상 정책 아젠다를 정리하다 보니 새삼 공부가 너무 부족하단 걸 실감했다.” 정책의 달인으로 살아온 관료조차 이런 말을 할진대, 공부도 덜한 채 표 계산에 눈이 멀어 마구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슬로건을 유권자는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번 대선에 도전장을 냈거나 준비 중인 모든 주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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