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진영논리 대신 원칙 택한 美 의원
조 맨친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요즘 워싱턴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원을 50석씩 양분한 상황에서 맨친 의원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때가 많아지면서다.

민주당은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까지 포함해 간신히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반란표’가 나오면 공화당이 반대하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 그런데 맨친은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자주 낸다. 지난달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워싱턴DC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승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맨친은 지역 라디오에 나와 “의회가 워싱턴DC를 주로 만들고 싶으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면서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을 비롯해 지미 카터·로널드 레이건 전 행정부에서 법무부가 이 문제를 검토한 결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민주·공화당 협치 중시

워싱턴DC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꼽힌다. 지금은 주가 아니어서 상·하원 의원이 없다. 하지만 주로 승격하면 민주당은 지금보다 상원의원 2명, 하원의원 1명을 늘릴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법안 통과를 지지한다. 그런데도 맨친은 ‘내 편’을 드는 대신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맨친은 연방 최저임금 2배 인상(7.5%→15.0%), 법인세율 28%로 인상(현재 21%), 2조3000억달러 인프라 투자계획 등 ‘바이드노믹스’에도 다른 소신을 밝혔다. 최저임금을 갑자기 2배나 올리면 자신의 선거구(웨스트버지니아주)처럼 낙후한 지역은 감당할 수 없고, 대대적인 법인세율 인상은 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인프라 투자 계획은 공화당 주장을 반영해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맨친은 공화당과의 협치를 중시한다. 민주당이 공화당 반대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 제도를 폐지 또는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단호히 ‘노(no)’를 외친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는 맨친을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며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맨친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자기들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족(部族)주의’는 문제라고 비판한다. (올 1월 CNHI웨스트버지니아 인터뷰)

맨친의 지역구 웨스트버지니아는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지난해 대선 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0% 가까운 득표율로 승리했다. 맨친은 여기서 두 차례 주지사를 지낸 뒤 상원의원 선거에 세 번 출마해 모두 승리했다. 그가 공화당과의 협치를 중시하는 배경이다.

"내 편만 옳다" 집단사고는 위험

바이든 대통령은 맨친과 수시로 연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맨친은 지난달 중순 의회전문지 더힐에 “바이든 대통령이 원할 때, 필요할 때 접촉해온다”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5~7차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더힐은 두 정치인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둘은 같은 부류”라며 둘 사이의 관계가 좋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내며 초당적 협력을 중시한 만큼 맨친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맨친의 생각이 늘 옳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진영논리에 빠져 “내 편만 옳다”고 우기는 대신 상대방을 인정하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이 주목받는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그런 정치인이 많아져야 ‘집단사고’에 빠져 반대 의견을 배척하고 상식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리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 그런 정치인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