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했던 시절,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됐다. 한정된 자원의 집중을 통해 단기간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누적됐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상호출자·채무보증 등으로 뒤얽힌 지배구조가 비판받았다. 이런 배경에서 생긴 게 3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와 동일인 규제다.

그 사이 세상은 한참 변했다. 경제 글로벌화로 국내 기업 간 경쟁이 의미가 없어졌다. 세계 도처에서 삼성과 애플이, 현대차가 도요타와 경쟁한다. 온라인 플랫폼이 중심이 된 시대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인도 아마존에서 직구하고, 넷플릭스를 시청한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도 크게 개선됐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기준들이 도입됐고, 외국인과 기관 등 주주들의 감시도 날카롭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 속에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은 투자를 받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이 성장하면 무조건 정부가 감시해야 한다는 ‘1980년대 프레임’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올해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공시의무 등 규제 대상인 기업이 71개로 역대 최대다. 네이버 셀트리온 등 코로나 시대에 약진한 IT·바이오 기업 7곳은 자산총액 10조원이 넘어 상호출자 제한 대상이 됐다. 공시의무 기업집단은 최대 141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은 최대 188개의 규제를 적용받는다.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해 기업을 옥죄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상속세 12조원을 통해 새삼 부각된 한국 상속세율(최대 60%)은 외신들이 깜짝 놀랄 정도다. 상속세는 징벌적 세율뿐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중소·중견기업들 가운데 상속세 부담 탓에 애써 키운 기업을 매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OECD 37개국 중 스웨덴 호주 등 15개국은 상속세가 0%다. 이들 국가가 바보여서가 아니다. 상속세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거나 해외로 내모는 것보다, 자국에서 사업을 키우도록 해 국민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많이 걷는 게 이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다. 미래 기술패권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2인3각 경기’를 하듯 합심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기업)의 뒷덜미를 잡는 식의 규제가 너무 많다. 이래선 경제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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