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장시간근로 해결 못한 주52시간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긴 국가였다. 2017년 연간 근로시간을 보면 멕시코가 2148시간, 한국이 2018시간이었다. 2018년 2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명분 중 하나가 장시간 근로 문제 해결이었다. 당시 개정안 제정 이유에선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과제’라고까지 표현됐다.

여기에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 창출 효과 기대까지 더해졌다. ‘노동 존중’을 표방한 정부·여당의 확고한 정책 의지에 야당이 동참하면서 법안은 일사천리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그해 7월 1일 300인 이상 기업부터 적용됐다. 3년 만인 올해 7월 1일부터는 5인 이상 전 기업에 적용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주 5일 근무제(토요휴무제)’를 도입하면서 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한 것에 비하면 이만저만한 ‘속도전’이 아니다.

실제 근로시간 단축 효과 못내

그간 장시간 근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펴낸 ‘2018년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의 고용효과 연구’에서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정책 효과에 대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분석 자료는 2018년 근로시간 단축이 강제된 300인 이상 기업에 한정했지만 결론은 분명했다. 실근로시간이 줄어들거나 일자리 신규 창출 효과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생산비용이 높아져 생산 규모를 줄이는 ‘규모효과’까지 감안하면 일자리가 오히려 줄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한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다 휴일 근무 때 지급되는 가산 임금의 할증률을 50%에서 100%로 높이는 조항까지 포함된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기업의 비용 증가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8년 근로시간 단축으로 ‘규모효과’가 상당히 클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해 자본 가동률을 높이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며 보완책 마련을 요구한 배경이다. 기업의 고정비용이 높아질수록 고용을 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지나친 속도전으로 여러 문제가 불거지자 ‘계도기간’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3개월→6개월)’ 같은 보완책도 나왔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올 7월 확대시행에 우려 커져

일정 기간은 법을 위반하더라도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계도 기간은 애당초 근본 대책이 아니다. 탄력근로제는 기업의 유연성을 일부 높여준다. 일정한 단위 기간 중 업무량이 많은 주의 근로시간은 늘리되 업무량이 적은 주의 근로시간을 줄여서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한도인 주당 52시간에 맞추는 게 탄력근로제다. 그렇지만 실제 도입하자면 근로자 대표의 서면 합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여러 달씩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정보기술(IT) 업종에서는 6개월의 단위 기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2개월로 늘리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영세기업들로선 주 52시간제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두 달여 뒤인 7월 1일부터 56만 개의 중소 제조업체가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기업 수도 그렇지만 납기 제약이 심한 중소업체의 실정을 고려하면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경기 회복은커녕 당장 공장 가동부터 걱정할 판” “‘기업 쪼개기’로도 피해갈 방법이 없다” 등 중소기업인의 하소연이 쏟아지는데도 대책 얘기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