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586
정치꾼들 눈에는 생업에 바쁜 국민이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로 비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참다 참다 더는 못 참게 되면 일어나는 게 장삼이사요, 민초다. 망가진 조선의 19세기가 ‘민란의 시대’였다면, 대한민국에선 투표로 심판한다. 지난 ‘4·7 재·보궐선거’가 그렇지 않은가.

3년 만의 기막힌 반전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무후무한 대승을 거뒀다. 시·도 단체장과 교육감 17곳 중 14곳, 기초단체장 226곳 중 151곳, 광역의원 78%를 독차지했다. 이를 두고 ‘산업화 세력의 퇴장’이란 평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 덕에 작년 총선도 180석 압승을 이어갔다. 20년, 50년 집권론까지 들먹였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이젠 ‘민주화 세력의 종말’이란 말이 나온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 4년을 조용히 지켜봤다. 전 정권에 실망이 컸던 만큼 기대한 이도 많았다. 그러나 조국 윤미향 이상직에게서 내로남불과 후안무치의 극치를 봤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이들에게서 적반하장을 목도했으며, 어설픈 아마추어 정책에서 무능을 실감했다. 그들의 ‘입’과 ‘손발’이 얼마나 따로 노는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2030세대의 확 달라진 표심을 흔히 ‘공정과 정의에 민감해서’라고 분석한다. 정작 청년들은 복잡하게 생각 안 한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한다. 30대 초반 후배는 “그냥 꼴 보기 싫고, 납득도 안 되는 말만 해대고, 맨날 못 하게 하고, 무슨 희한한 담론으로 가만히 있는 애들을 이상한 사람 만들고 난리 치니까 그렇다”고 꼬집는다. 그런데도 자기들만 선(善)이며 정의라고 우기고, ‘내 편 무죄, 네 편 유죄’로 일관했으니 탈(脫)진실·탈염치 집단으로 비칠 수밖에.

선거 보름이 지나자 여권에선 반성도, 성찰도 희미해졌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그제 민주당 초선모임 강연에서 “생각이 끊겨 정신승리에 빠졌다”고 정곡을 찔렀다. 현안 대처 능력도, 미래를 위한 치열한 상상력도 없으니 과거사에 집착할 뿐이다. 백신과 반도체의 엄중한 위기 앞에서조차 적폐 청산, 친일잔재 청산, 조국 수호의 낡은 레퍼토리를 튼다.

그러면서 ‘중단 없는 개혁’을 하겠다니 어이 상실이다. ‘위선 무능 내로남불’의 본인들부터 개혁해야지 또 뭘 어쩌겠다는 건가. 경제·민생은 손대는 것마다 참사를 빚고, 부끄러움도 없이 셀프특혜법·구제법을 남발한 자신의 몰골은 안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여권의 핵심 다수가 정치판 586이다. ‘시대의 짐’이 된 그들은 선수층도 두텁다. 전대협 간판들이 뒤로 빠지자 새로운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나온다. 30대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벌써 3~4선(選)이 수두룩하다. 다른 분야의 동년배들이 정년을 맞아 퇴장하는데 선출직은 정년도 없다. 마르고 닳도록 해먹을 동안 그 아래 40대는 속된 말로 줄을 잘못 섰다.

이제 정치판 586과 그 배후의 지식인을 자처하는 ‘배운 무식자’들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부를 만하다. 세대의 유효기간이 한참 지났어도 ‘역사적 경험치’라는 오만에 빠져, 세상이 바뀌었음을 눈 뜨고도 못 보는 청맹과니가 된 것이다. 민주화는 쟁취하는 것이지만,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성찰과 절제 속에 체화하는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오로지 증오와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골몰한다. 정권을 잡고도 경세제민과 국리민복을 위해 무슨 입법과 정책 노력을 편 게 있기나 한가.

4·7 선거를 통해 시대착오적 관념론에서 자유로운 2030세대를 확인한 것은 그나마 소득이다. 2030은 586에 빚진 게 없다. 그래서 ‘좌파 전체’가 아니라 ‘좌파 전체인 양’ 민주화 공로를 독식하고 기득권이 된 정치판 586의 퇴장을 당당히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더이상 86세대에게 사회변혁의 임무를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화해서 집에 잘 보내드리자”(《추월의 시대》)는 30대 논객의 일침도 있다.

‘데뷔작이 대표작’이고, ‘사유는 없고 사익만 충만’한 집단이 나라와 국민의 금쪽같은 5년을 허송케 했다. 어쩌겠나. 국민이 몰라서 또는 약아서 선택한 것인데. 그래서 “정치인과 기저귀는 자주 갈아줘야 한다. 그 이유도 같다”(마크 트웨인)고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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