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공기업 개혁은 시대적 요청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공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정면 도전이다.

공기업의 위상은 막강하다. 임직원 수가 43만 명을 넘는다. 총인건비가 30조원을 상회한다. 부채도 388조원이나 된다. 경쟁제한과 진입규제로 독점적 이윤과 안정적 시장지배가 보장된다. 낮은 서비스 품질로 소비자 불만이 크다. 높은 임금 수준, 과도한 복지 혜택으로 국민의 눈총을 받고 있다. 평생 신분 보장으로 ‘철밥통’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 시중에는 “로펌 변호사와 LH 직원이 최고의 신랑감”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경영은 외화내빈(外華內貧) 상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6.5개씩 공기업이 늘어났다. 정부지원금은 2020년 88조원으로 급증해 총수입의 12.1%를 차지한다. 2016년 말 대비 임직원 수는 8만5000명 증가했다. 시장형·준시장형 공기업 36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9년 5%로 추락했다.

도덕적 해이, 방만 경영, 철밥통 정서가 3대 고질병이다.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청나라 사상가 고염무는 불렴즉무소불취 불치즉무소불위(不廉則無所不取 不恥則無所不爲)를 강조했다. “염치가 없으면 받지 못할 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는 뜻이다. LH 사태는 공기업 종사자의 윤리의식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2019년 사회복지기금에 474억원을 출연했다. 공기업 중 최대 규모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254%로 공기업 평균 167%를 훨씬 웃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해외 자원사업 실패로 2016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지만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했다. 시중금리 대비 과도하게 낮은 수준의 주택 융자금 제공, 임직원 명예퇴직 부정 수급 사례 등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방만 경영이 도를 넘어섰다. 출자회사의 만성적 적자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수천억원 적자를 내는 한국전력 자회사 다섯 곳에 한전공대 설립비용 240억원씩을 떠넘겼다. 한국마사회는 대규모 정규직 전환으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돼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 투자 후유증으로 한국석유공사, 대한석탄공사는 자본잠식 상태다.

철밥통 정서가 만연해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공기업 종사자는 조직에 공정과 신뢰 회복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실제 변화를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직무급제 도입도 대부분 연공서열을 유지한 채 직급 이름만 바꾸는 흉내내기에 그치고 있다.

공기업 개혁은 인사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혁신의지가 있는 사람이 경영을 책임져야 한다. 상임감사 선임에서도 적재적소의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여야 대표들과의 회동에서 “공공기관 인사에서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는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공염불이 됐다.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이 사실상 공기업을 접수했다. 비금융 공기업 36곳의 비상임이사 가운데 25%가 감사·회계 전문성이 떨어지는 시민단체, 정치인 출신이다. 상임감사는 무려 60%나 된다.

자율경영을 보장하고 경영 성과에 철저히 책임을 묻는 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는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실은 공기업이 정부의 정책비용을 떠안는 구조다. 인사·예산·조직의 사전 협의가 관례화돼 있다. 좋은 실적을 낸다고 연임되는 최고경영자도 거의 없고 경영 손실을 초래해도 자리를 지킨다. 임원 해임건의가 사실상 실종됐다.

공공부문의 거품을 빼야 한다. 공공의 비대화가 계속되는 한 공기업 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큰 정부가 아니라 스마트 정부가 필요하다. 공기업 비대화는 정부가 시장을 지배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공기업 개혁은 시장의 힘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