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식량 안보'와 곡물사업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은 국제사회의 식량 봉쇄였다. 1700만t의 밀과 옥수수 공급이 막히는 바람에 결국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말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도 식료품 부족에 따른 가격 폭등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다. 식량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2008년과 2011년에는 농산물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애그플레이션’으로 세계가 휘청거렸다. 농식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교역품이다. 자동차 교역 규모의 세 배가 넘는다. 현재 78억 명인 세계 인구가 10년 뒤 85억 명으로 늘어난다. 농산물 대란이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 곡물가격은 지난해 6월 이후 10개월째 상승세다. 2014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봉쇄 조치와 물류 대란, 기상이변까지 겹쳐 공급이 급감한 탓이다. 감염병 확산 때문에 수확이 늦어지는 곳도 많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19년 기준 45.8%에 불과하다. 2009년 56.2%에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부족한 식량은 수입한다. 콩은 72%, 밀은 약 99%를 해외에서 들여온다. 사료용 소비까지 합한 곡물자급률은 21%밖에 안 된다.

지난해 곡물 부족으로 홍역을 치른 주요국들은 공공비축 물량을 늘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은 주요 식량의 9개월분 이상을 확보했다. 쌀을 전량 수입하는 싱가포르는 비축 물량을 두 배로 늘렸다. 일본은 밀 2~3개월분과 사료곡물 2개월분을 상시 비축하는 식량위기 대응 매뉴얼을 법제화했다. 일본 종합상사들도 세계를 누비며 곡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곡물 유통망을 제대로 구축한 기업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유일하다. 이 회사는 2019년 우크라이나에 연간 250만t 규모의 곡물 수출터미널을 준공했다. 미얀마 쌀 도정 공장과 인도네시아 팜오일 농장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800만t인 곡물 취급량을 2030년까지 2500만t으로 늘려 세계 10위 식량종합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도 내놨다.

보릿고개 시절 ‘제철보국(製鐵報國)’으로 나라를 일으킨 철강그룹이 종합상사를 인수해 해외 식량 개발에 적극 나선 덕에 ‘식량 안보’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어 다행이다. 하긴 정주영과 이병철 등 1세대 창업자들도 쌀가게와 정미소로 사업을 시작해 세계 시장을 제패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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