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욱 열린우리당 대표가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두고 ‘셀프구제법’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법상 명예 관련죄는 피해자의 의사 표시와 관계 없이 제3자 고발로도 수사 착수가 가능하다. 최 의원은 이런 법을 고쳐 ‘친고죄’를 적용, 피해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 및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 대표는 현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피해자가 아니라 제3자(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다. 만약 재판이 끝나기 전 법안이 통과된다면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신법(新法)을 우선 적용해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공소 자체를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최 대표의 법안은 명백한 ‘셀프구제법’이다. 입법권을 사익(私益)을 위해 남용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이해충돌 위반을 넘어 국회의원의 입법 타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최 대표는 법안 발의 이유로 “제3자의 고발에 의한 ‘전략적 봉쇄(비판활동 막기) 소송’에 악용되는 사례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그런 의도가 있더라도 본인 재판이 끝난 다음 법안을 제출하는 게 상식이다.

의원들의 ‘셀프구제 입법’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여권 의원들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을 주도한 것도 어이가 없다. 이 법이 통과되면 검찰에 남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수사가 중수청으로 넘어간다. 법안 발의 의원 중 상당수가 후원금, 사전 선거운동 등으로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이해상충 여지가 있으면 스스로 제척(除斥)하는 게 당연한데도 기본적 공직윤리 의식조차 없는 듯하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사와 가족들에게 교육·취업 등 각종 지원을 해주자는 ‘운동권 셀프특혜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안)’도 여론의 거센 비판에 철회되긴 했지만 불공정, 반칙, 특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입법권을 가졌다고 아무 법이나 만들어도 된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거스르는 행위다. 국회는 명예를 걸고 입법 사유화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주의 퇴행과 입법 타락을 방조하는 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