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내년 대선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4·7 재·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온갖 해석이 난무하고 있지만, 정작 짚어야 할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선거 과정에서 분명해진 한국 정치리더십의 후진성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이다. ‘가덕도 신공항 소동’이 단적인 사례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몇 차례나 ‘부적합’ 진단을 내린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를 앞두고 되살아난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줬다. 전말(顚末)을 제대로 기록하고 돌아봐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최소 28조원(국토교통부 추정)이 들어가야 하는 데다 엄청난 해수면 매립으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 논란이 제기된 가덕도 공항 건설계획을 ‘묻지마’로 밀어붙였다. “동남권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부산시민들이 원하는 사업”이라는 등의 주장을 앞세워 예비타당성조사마저 생략하는 특별법을 강행 처리했다. 특유의 바람몰이를 통해 ‘가덕도 공항 반대=부산 발전 반대’의 정치공식을 확립하고선 다른 목소리를 틀어막았다. 제1야당을 꼼짝없이 동조대열에 끌어들일 정도로 서슬이 시퍼렜다.

놀라운 건 그런 선동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이 국정 최고·최종책임을 맡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되자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이 법에 반대하지 않는 건 공무원으로서 직무유기”라는 법률 자문내용을 제출하면서까지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이 “신공항에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국토부 장관을 질타했고, 모든 논란을 이 한마디로 잠재웠다. 과학과 합리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의지의 문제’로 바꾼 순간이다.

지도자가 반대의견과 싸우며 굳센 의지로 정책의 물꼬를 트거나 바꾸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결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소한 ‘구성의 오류’는 없어야 한다. ‘기후위기 비상대응’을 선포하며 탄소중립을 앞당기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이라면 환경과 생태계 파괴 논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했어야 한다.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 지도자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내놓을 리 없다. 방향성을 알 수 없는 모순적인 정책을 “시민(국민)이 원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쏟아내는 건 무책임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일 뿐이다. “여론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여론 속에 미래 비전이나 전략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늘 하던 얘기’(김병준,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를 어떻게 들었던 건지 궁금하다.

‘가덕도 사건’만 그런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상호 모순 속에서 파편화돼 진행되는 정책이 수두룩하다. 대부분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할 중요 정책들이어서 더 큰 문제다.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하고서는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원자력발전을 폐기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것부터 그렇다. ‘약자 보호’와 ‘일자리’를 최우선 아젠다로 자임한 정부가 노동약자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근로시간 등의 정책을 밀어붙여 저소득층에 직격탄을 날린 상황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

무(無)개념·무능·무책임으로 요약되는 이런 모순적 정책의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 지난 좌파 운동권과 시민단체의 이념 원리주의에 빠져 결정되고 강행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탈원전’을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 의사 출신 환경운동가가 조언하고, 이론서적 몇 권 읽은 시민운동가 집단이 부동산정책을 맡는 식이다. 그 결과는 소득계층 간·세대 간 갈등 확대와 사회적 활력 저하로 국민에게 돌아왔고, 곳곳에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가 막을 내리면서 정치권은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선거 준비 체제에 들어갔고,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대통령이 갖춰야 할 소양과 자질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문은 이미 넘쳐난다. 과거 회귀가 아니라 국가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미래 지향의 안목과 비전, 진영을 넘어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하는 혜안과 뚝심 등은 그중에서도 공통 요건으로 제시된다. 문 대통령의 지난 4년은 너무도 당연한 이런 것들의 중요성을 절박하게 일깨워줬다. 대선주자들에게 그를 ‘반면교사’로 추천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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