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실린 ‘어느새 후진국이 되었는가’라는 익명 칼럼은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눈길을 끈다. 1인당 국민소득(GNI)이 4만달러가 넘고 경제력, 기대수명, 법 질서 등 통상적 기준에선 이견의 여지 없는 ‘선진국 일본’인데, 스스로 ‘후진국’으로 혹평하고 비판한 것이다. 이 칼럼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했음을 느끼게 됐다며, 백신·디지털·환경·젠더·인권·재정 분야 등에서 왜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했는지 조목조목 짚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 얘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후진국 전락’의 원인이 책임지지 않고 창의력도 부족한 정치와 행정에 있다는 분석엔 더더욱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칼럼에선 먼저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 일본이 미국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개발국’도, 인도처럼 생산거점도 아니고 백신 접종률은 세계 100위권 밖인 점을 개탄했다. 한국은 어떤가. 백신 접종률(2.21%)이 1% 미만인 일본에는 앞서지만 한국보다 1주일 늦게 접종을 시작한 르완다(2.8%)보다도 진행 속도가 늦다. 일부 백신의 위탁생산에도 ‘백신 공백’을 메우는 데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젠더 후진국’이란 문제도 엇비슷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성평등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56개국 중 102위에 그쳤다. 일본(120위)보다는 순위가 높지만, 어디 내세울 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다. 기업 내 ‘유리천장’이 여전히 두껍고, 여성이 단체장이나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면 그게 뉴스가 된다. 나랏빚 급증 또한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2020년 48.7%에서 2026년 69.7%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채무비율 수준은 IMF 선진 35개국 평균보다 낮아도 증가속도는 2위로 가파르다.

한국에도 나라 걱정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선진국은커녕 자칫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많은 국민이 우려한다. 그러나 정작 나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오직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모든 것의 정치화’로 치닫기 일쑤다. 그런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경고가 지난 4·7 재·보궐선거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선진국’이란 1인당 소득만 높다고 도달하는 게 아니다. 중동 산유국들을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다.

경제적 토대는 기본이고 여기에 더해 예외 없는 법치, 다양성과 인권 존중, 문화와 환경, 의료·기초과학 등 다방면에서 수준이 올라야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에서 나온 신랄한 자성(自省)이 우리 사회에도 죽비를 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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