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규제가 약이 되도록 하려면
요즘 ‘테스형’으로 회자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아테네 시민이 된 이상 아테네 법을 준수해야 한다며 다른 도시로 도망가지 않고 사형 판결에 따라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잘 알려진 이 사례는 법이 강제적으로 집행되기보다 자발적으로 수용돼야 효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규제 대상자가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 그 효과가 온전히 생긴다. 기업 규제는 대부분 기업 활동에 대한 제한이고, 비용 상승을 초래한다. 기업으로서는 반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선도적으로 자발적인 규제를 도입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가 서울대와 함께 ‘AI 윤리준칙’을 제정하고, SK가 사회적 가치를 회계준칙에 넣은 ‘더블보텀라인’을 만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자칫 ‘독’이 될 수 있는 규제를 ‘약’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그 처방은 기업이 규제를 결정하는 정치·사회적 과정에 얼마나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가에 있다. 어느 나라든 기업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규제는 경영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많은 경영자가 ‘기업하기 어렵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다’고 항변하며 사적인 관계 속에서 규제를 해결하던 부정적 경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그 결과 기업들이 민주적 정치 과정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업의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기업을 둘러싼 규제 및 정책에 관련된 쟁점과 이해관계자에 따라 다양하고 체계적인 소통 노력이 요구된다. 이런 노력은 개별 기업만으로는 버겁기에 동종 기업의 연합,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강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 정책과 규제의 참여자가 돼야 외부 환경에서 오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업의 정치 참여가 흔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사회와의 소통 노력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기업들이 정책 결정 기구 내부의 제도적 과정과 여기에 포진한 엘리트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라고 한다. 성패는 ‘권력자의 귀에 다가가 무엇을 속삭이는가’가 아니라 정책결정 기구의 외부에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얼마나 설득하고 연합하는지에 달려 있다.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소통 노력도 평상시에 꾸준히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와 종업원들의 고용주에 대한 신뢰도가 다른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불신사회’로 분류된다. 기업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는 임직원의 기업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믿지 않는데 먼 데 있는 사람이 믿겠는가? 최근 대기업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은 기업 내부의 소통 노력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기업이 임직원들의 자존감과 기업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는 세련된 소통 노력이 요구된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 우리 사회의 소위 ‘반기업 정서’도 완화되고, 기업의 정치 과정 참여에 개방적인 태도와 관용이 자라난다. 한마디로 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때, 규제는 기업에 대한 ‘독배’가 아니라 기업 발전을 촉진할 새로운 자극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