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SK그룹이 장장 2년여에 걸친 배터리 분쟁을 ‘합의’를 통해 매듭지은 것은 여러모로 다행이고 환영할 일이다. 수천억원의 소송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양사가 송사(訟事)에 매달리는 동안 중국 기업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주고, 유럽 기업들에 시장 잠식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등 유·무형의 손실이 적지 않았다. 늦었지만 이번 합의를 ‘K배터리’가 다시 경쟁자들을 제치고 초격차를 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양사의 ‘자발적 결정’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물밑 압박’으로 ‘막판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곱씹어 볼 대목이 많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영업비밀 침해로 10년간 수입금지 판정을 받은 SK에 거부권 행사로 ‘면죄부’를 줄 수도, 그렇다고 SK가 미국 공장을 뜯어 유럽으로 가게 놔둘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였다. 그래서 미무역대표부(USTR)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합의를 종용해왔다. 이달 초 한·미 안보실장 회의 때도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LG·SK의 합의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워싱턴포스트), “미국 노동자·자동차업계의 승리”(로이터통신)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한국 기업 간 송사에 개입할 정도로 자국 이익을 ‘철저히’ 챙기고 있고, 그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는 통상에선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전략물자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으로, 외교·안보적으론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를 중심으로 대(對)중국 봉쇄라인 구축을 꾀하고 있다. 우선 한국과 일본, 대만을 잇는 전략물자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향후 중국과의 경쟁에서 ‘칼자루’를 계속 쥐겠다는 구상이다. LG·SK의 합의에 끝까지 공들인 것도, 12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 반도체회의에 삼성전자를 초대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이런 국제환경 변화 속에 우리 정부가 대중(對中)·대북(對北)정책에서 미국과 마찰을 자꾸 빚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 정부가 지난달 ‘한·미 2+2(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 강한 톤으로 한국의 쿼드 참여를 요청한 것이나, 오는 15일 미 의회가 대북전단금지법을 놓고 한국의 인권청문회를 여는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줄타기 외교가 계속 통할지 의문이다. 무엇이 국익을 위한 길인지 정부는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