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을 적폐로 모는 정치 말고
급여체계 개편 지원해 갈등 해소
자본조달·인력양성에도 힘 보태야

김태기 <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
[시론] 첨단산업 발전, 안보차원에서 바라봐야

부자라고 다 화목한 것은 아니다. 가족이 다투다가 공멸하는 경우도 있다. 부자라고 이해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서로 잘났다고 경쟁하다가 둘 다 추락하기도 한다.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자 가족은 분배가 불공정했다고, 부자들끼리는 상대방이 반칙을 했다며 다툰다. 다툼을 말릴 사람조차 없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첨단 산업이 이런 조짐을 보인다. 반도체, 2차전지, 전기자동차, 정보통신과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선도 기업들이 기대를 넘어 성장했지만 먹구름이 안팎에서 밀어닥친다. 방치하면 다른 나라가 그 틈을 파고들어 반짝 성장에 그칠 수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싸우는 사이 독일 폭스바겐은 배터리 자체조달을 선언했다.

우리나라 첨단 산업은 코로나19 위기에도 매출과 수익이 증가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직원들의 급여도 파격적으로 올랐지만 되레 노사 갈등은 커지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CXO)에 따르면 작년에 1인당 연간 급여가 1억원 이상인 회사가 68곳으로 증가했는데 곳곳에서 급여의 불공정성 관련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첨단 기술 기업은 인재확보와 사기진작을 위해 급여를 올렸지만 기업의 가치창출 기여도와 괴리된 급여체계에 대해 불만이 쌓이면서 노조가 설립되고 있다. 게임 등 벤처기업이 밀집한 판교가 그렇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성과급이 적다며 기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급여를 반납했지만 기준을 합리적으로 만들자는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SK텔레콤 직원들은 이익과 관계없는 나눠먹기식 성과급을 비판하고, 현대차 사무직 직원들은 생산직 중심으로 된 급여체계 개편을 요구하며 별도의 노조를 만들자는 얘기도 한다.

부자라고 정부가 잘 봐주는 것은 아니다. 밉보이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부자 가족의 내분이나 부자끼리의 싸움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세상물정 모르고 힘이나 마구 휘두르면 나라 경제엔 치명적이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선두주자인 삼성전자가 그렇다. 자동차 생산이 반도체 부족으로 차질을 빚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반도체 없는 첨단산업은 상상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대립도 반도체가 핵심 이슈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 확보를 안보문제로 보고 국가적 과제로 반도체산업을 키우려 한다.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강대국들이 탐내는 마당에 정부는 삼성전자 최고경영자를 적폐 취급한다. 한국 정부의 고위인사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중국은 물론 미국도 안보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고,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한다.

첨단산업의 발전은 국력의 척도로, 나라의 성장을 좌우한다. 첨단산업은 1등 기업에 의한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기에 국제경쟁은 그만큼 치열하다. 기업의 구성원이 창출한 아이디어 하나에 따라 우열이 바뀌고, 내부분열과 핵심인재 이탈은 경쟁에서의 탈락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첨단산업이 발전을 지속하려면 엄습하고 있는 먹구름부터 걷어내야 한다. 다른 기업과 경쟁의 공정성은 물론 내부적으로 급여의 공정성도 확립해야 한다. 공정성은 자기 몫을 더 챙기는 수단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불만은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첨단산업의 중요성을 ‘안보’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자본 조달은 물론 인력양성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기술·숙련 인력의 부족은 첨단산업 내부의 갈등을 키우고 임금인상 경쟁까지 일으키며 다른 산업에서의 인력난도 가중시킨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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