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폭스바겐 '배터리 내재화'란 암초
지난달 15일 독일 폭스바겐(VW)이 ‘파워데이’ 행사를 열었다. 폭스바겐 전기자동차(EV)용 배터리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9월 테슬라가 개최한 ‘배터리데이’와 같은 성격이다. 테슬라와 폭스바겐이 자동차 자체가 아니라 구성 부품을 대상으로 대규모 행사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다가오는 EV 시대에 배터리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고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EV인 볼트(BOLT) 사례를 보면 배터리가 완성차 총재료비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폭스바겐 파워데이와 테슬라 배터리데이의 공통적 특징은 양사가 배터리를 자체 생산할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생산원가와 기술적으로 EV의 핵심 요소인 배터리를 부품 공급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피력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배터리 공급의 85%를 한국의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중국의 2사(CATL, BYD) 그리고 일본 파나소닉 등 6개 회사가 점유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테슬라는 2025년에 각각 80GWh, 1TWh를 내재화하며, 2030년에는 각각 240GWh, 3TWh로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이 2030년 계획한 240GWh는 60㎾h(GM 볼트 기준) EV를 400만 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동시에 폭스바겐, 테슬라 양사 모두 배터리 가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구체화했다. 폭스바겐은 50%, 테슬라는 56% 줄이는 방안인데, 이는 EV 판매가를 조기에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2019년 현재 배터리 가격은 팩단위로 볼 때 156달러/㎾h이다. 테슬라 목표치 56%를 적용하면 70달러/㎾h인데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에 의하면 2023~2024년께 100달러/㎾h가 생태계가 건전히 발전할 수 있는 합리적 목표치로 보인다. 결국 폭스바겐, 테슬라 양사의 선언적 목표치가 배터리 공급사 간에 치킨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원가 절감 아이디어는 설계, 생산 공정, 재료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규격 표준화로 대량 생산을 유도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80%의 셀을 각형으로 통일하겠다고 했고, 테슬라는 4680사이즈(지름 46㎜, 길이 80㎜)의 원통형 셀을 제시했다. 동시에 전극 생산에서는 건식 제조 공정을 도입한 획기적인 원가 절감 방안을 제시하고, 재질 측면에서는 양사가 양극재를 가격대별로 분류해 적용하는 접근법을 제시했다(저가형은 인산철, 보급형은 코발트 제외, 고급형은 니켈강화 3원계).

주목할 점은 다수의 한국 배터리 업체가 파우치 타입의 셀을 생산하고 있는 가운데 테슬라와 폭스바겐이 원통형 및 각형 셀을 주력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배터리 유형별 점유율을 보면 중국의 영향으로 각형이 여전히 50% 수준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감소하고 오히려 에너지 밀도, 경량화, 원가, 열관리 측면에서 우수한 파우치 타입의 증가세가 뚜렷했다. 따라서 테슬라, 폭스바겐 양사의 제안은 협력사인 일본 파나소닉과 스웨덴 노스볼트를 의식한 상업적 포석으로 보인다. 더욱이 물류 등의 영향으로 공급처의 지역화가 우선시돼 미국 및 유럽에 상당량의 파우치 타입 셀 공장이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폭스바겐의 각형 제안은 실현성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각형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전반적으로 배터리에 대한 핵심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폭스바겐 파워데이 행사는 테슬라 배터리데이 6개월 뒤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점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테슬라의 행보가 거침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양사의 행사에서 보듯이 자동차사의 배터리 내재화 요구가 거세질 텐데, 현재 배터리 공급사의 장벽은 당분간 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이 쌓아온 설계 및 제조공법에 관한 수만 개의 특허를 자동차사가 단기간에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상당 기간 자동차사와 배터리 제조사 간 전략적 협업 내지는 짝짓기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