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포장재 표시의무화법' 수천억 피해 뻔한데…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힘든데, 왜 이럴 때 규제가 자꾸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정부와 여당 의원들이 입법을 추진하는 포장재 사전 검사와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윤미향 송옥주 안호영 등 12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발의하고 환경부가 강한 의지를 보인 이 개정안은 모든 제품의 포장재에 대해 전문기관에 사전 검사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제품 포장지에는 포장 재질, 포장공간 비율, 포장 횟수, 검사일, 전문검사기관명 등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다.

식품을 비롯한 화장품, 문구, 완구업계는 “추가 부담해야 할 규제 비용만 수천억원대에 달한다”며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규제의 실익이 없다는 견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본지의 지난 2월 17일자 보도(A1·3면 ‘난데없이 포장재 사전 검열하자는 與’) 이후 환경부는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법안 수정을 검토 중이다. 자체 검사를 허용하고 표시를 간소화하거나 소용량 제품에 대해선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포장재 사전 검사’와 ‘표시 의무화’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법안을 손질할 것으로 보여 업계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포장재 사전 검사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법 도입 취지는 기업들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의 반발이 특히 심한 건 표시 의무화 규제다. 정부 기준에 맞는 포장재를 새로 찍어내기 위한 금형 비용, 기존 포장재 폐기 비용 등으로 부담이 큰 데다 오히려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화장품업계는 국내에 유통되는 23만 개 품목과 관련해 2만 개 업체가 부담하게 되는 검사 비용만 290억원, 포장재 교체 비용은 11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2만6000여개 품목을 가진 건강기능식품업계 역시 500개 업계가 부담해야할 비용만 최소 3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식품업체 사장은 “연간 당기순이익이 2억~3억원 정도인데 포장재 교체 비용으로 다 날아가게 돼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현행법은 가공식품, 음료, 세제류, 문구류 등 14가지 품목에 대해 포장공간 비율(10~30% 이하)과 포장 횟수(1~2차 이내) 등을 세부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미 이를 모두 지켜야 출시할 수 있는데 제품마다 포장 정보를 표기한들 관심을 보일 소비자도 없을뿐더러 포장재 감축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오히려 재고로 쌓아둔 기존 포장재를 모두 폐기하게 되면서 환경을 해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개정안이 규정을 잘 지키는 기업에까지 한꺼번에 부담을 주는 대표적인 ‘단체 기합식 규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기업들은 “차라리 포장 규정을 어긴 기업을 더 강하게 처벌해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취지만 좋고 정반대 결과를 낳는 정책이라면 도입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포장재를 줄이고 친환경 포장재 개발을 촉진할 획기적인 정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