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시
조식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네,
콩을 걸러 즙을 만드네.
콩깍지는 가마 밑에서 타는데
콩은 가마 안에서 우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서로 볶기를 어찌 그리 급한가.


조식(曹植): 중국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아들. 재주가 뛰어났지만 형의 위세에 눌려 오랫동안 변방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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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아들 중에서 가장 재주가 뛰어난 인물은 셋째 조식이었다. 조식의 문재(文才)는 출중했다. 어릴 때부터 나라 안팎의 칭송이 그치질 않았다. 그를 총애한 조조가 맏아들 조비를 제쳐 놓고 후사를 이을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맏아들 조비는 그런 동생을 몹시 미워했다. 후계 문제에서도 밀릴 뻔하자 증오와 질투는 극에 달했다. 조조가 세상을 떠난 뒤 제위에 오른 그는 동생을 죽이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혈육을 죽였다고 비난받을까 두려워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네 글재주가 좋다고 하니 일곱 걸음 안에 시를 한 수 지어봐라. 성공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칙령을 어긴 죄로 처형하겠노라.”

이 기막힌 상황에서 나온 것이 ‘칠보시(七步詩)’다. 콩과 콩깍지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에 비유하며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풍자한 것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조식이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대결적 언어’로 맞섰다면 어찌 됐을까.

지금도 형제나 동족 간 싸움에 자주 인용되는 이 시는 즉자적인 ‘날것의 언어’보다 은유와 상징을 녹여낸 ‘숙성의 언어’가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소통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진정한 소통은 ‘잘 익은 언어’에서 나온다.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앞뒤 돌아보지 않고 되받아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미 동서고금의 수많은 고전과 명구들이 다 알려준 교훈인데도 우리는 자주 이 소중한 원리를 잊어버리곤 한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툭하면 ‘삿대질 어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날것의 언어’로 마구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다 상대방이 ‘낮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할라치면 거두절미하고 딱 자르며 되레 승리자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해 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조직에서든 적을 만들고 결국엔 스스로 좌초되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한 뿌리에서 난 ‘콩’과 ‘콩깍지’ 아닌가. 참다운 ‘소통의 기술’을 익힌 사람이 많아야 성숙한 사회가 되고, 성숙한 사회가 돼야 성숙한 국가도 가능하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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