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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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페이스북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고 염장을 지르는 글을 올렸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언급하며 “박원순은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며 “청렴이 여전히 중요한 공직자의 윤리라면 박원순은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였다”고 했다. 또 “박원순은 미래 가치와 생활 이슈에 가장 민감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열정까지 매장되진 않았으면 한다”면서 ‘박원순 예찬론’을 설파했다. 그는 심지어 "용산 공원 숲속 어느 의자에 매순간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자 치열했던 박원순의 이름 석자를 소박하게나마 새겨넣었으면 좋겠다"고도 썼다.

임씨의 글을 보고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가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자리가 바뀌었다"고 호소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피해자에 2차 피해를 가하는 몰상식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임씨는 자신의 '소신'임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글을 보고 화를 내고 혀를 끌끌 차다가 어느 순간 이 글이 임종석을 비롯, 86 운동권으로 불리는 현 집권세력들의 사고 방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 씨의 사고 방식은 인지상정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다. 우선 그는 박원순의 성추행 사건과 공직자로서 박원순의 청렴성이 전혀 별개 사안이라는 걸 모르는 듯 하다.

사람의 인격과 인성은 매우 복잡하다. 위대한 예술가 중에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많고 정치인이나 스포츠 스타 중에도 사생활이 복잡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은 특정인의 공과 과를 나누어 잘한 것은 잘한 대로 평가하고 잘못은 또 별도의 잣대로 평가한다. 하지만 잘못이 워낙 커 사회의 공분을 일으킬 정도라면 그 사람 전체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어느 정도 청렴했는지는 직접 체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 그가 손가락질 받는 것은 그의 공직생활이 청렴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박원순의 문제는 시장이라는 권력자의 지위를 이용해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비서에게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수년간 저질렀다는 데 있다. 박 전 시장 스스로 이런 어두운 면이 밝혀진 것을 인정하기 어려워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추행 때문에 국민 세금까지 들여 오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박원순이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고 했는데 피해자 여성과 그 가족들에게는 정말 몹쓸 사람이었음에 분명하다. 임 씨는 박 전 시장이 훌륭한 공직자였기 때문에 비서 성추행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성인지 감수성에 크게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시장 비서라는 하위직의 피해는 시장의 업적으로 덮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임 씨의 논리대로라면 수갑을 차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추행 성폭행범들도 다른 분야에서 성실하고 청렴하면 몹쓸 사람이라고 함부로 욕하면 안된다는 게 된다. 흥미로운 건 흉악한 성폭행범 중에는 평소에는 착실하고 얌전해 주위에서 성실한 청년으로 여기던 사람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성범죄가 밝혀졌을 때, 평소에는 성실하니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고 해야 한다는 얘긴가.

임 씨에게는 다 큰 딸이 있다. 한 동안 어떤 유튜브에는 그의 딸이 명품을 걸치고 다니며 호화 유학생활을 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해당 유튜브는 임 씨가 공개한 재산으로는 딸 유학비를 대기 어려울 것이란 의혹도 제기했다. 호화 유학생활은 그렇다 치더라도 만약 임 씨는 자신의 성장한 딸이 박원순 비서가 당한 것 같은 성추행을 박원순으로부터 당했다고 해도 지금과 똑같이 박원순을 두둔하고 그의 이름 석자를 용산 공원에 새기자고 했을까.

임 씨는 박 전시장이 업무추진비를 아껴쓰고 서울시내 도로 곳곳에 어린이 보호구역과 속도 제한 구역을 만들어 안전한 도시를 만들었다며 운전할 때마다 박원순을 만나고 그의 향기를 느낀다고도 했다. 이 부분은 비교적 사실에 접근한 것일 수 있다. 박원순이 서울 시장을 하면서 잘한 일, 이룬 업적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 씨는 서울 거리에서 버스 전용차선을 본 적은 없나. 전용 차선 덕에 버스가 막힘 없이 도심을 통과해 서민들의 출퇴근 고민들 덜어주는 것은 누구 때문인지 생각해 본적은 없나. 한강변에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을 보면서 누가 이런 멋진 길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적은 없나. 바로 지금 쇠창살 뒤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든 것들이다.

누군가가 버스 전용차선을 보고, 한강 수계의 각종 보(洑)를 보면서 이명박의 향기를 느낀다며 지금은 범죄인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이명박이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고 말한다면, 그를 구속시킨 이 정권 핵심 인물 중 한명인 임 씨는 어떤 대답을 할까. 이명박 이름도 용산에 새기자고 할까.

임 씨가 이런 독특한 생각을 하는 것은 사람을 잘·잘못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내 편'과 '네 편' 으로 가르는 운동권 특유의 사고 방식 때문으로 보인다. 이 정부에서 여러차례 보아왔듯이 이들은 내 편은 어떤 잘못을 해도 감싸고 돌지만 반대로 반대편의 잘못은 자그마한 것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조국 일가의 부정 비리 의혹이 한창 터질 때조차 조국 지지 시위가 벌어진 게 바로 이들의 사고 방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재밌는 것은 박원순을 두둔하는 임 씨의 페이스 북 글에 조국이 '슬퍼요' 를 눌렀다는 점이다. 그도 임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데 이들의 사고는 원시 부족 사회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이들에게 합리주의나 자유민주주의, 법의 지배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난 4년간 이 나라를 멋대로 주물렀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요즘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기사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세상엔 상식으로는 떠올리기 어려운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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