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조 반발에 발목잡힌 은행 혁신
“리브엠(국민은행 알뜰폰 브랜드) 혁신금융사업 재지정에 반대한다!”

지난 22일 국민은행 노조 집행간부들은 금융위원회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4월 1일 시행 2년을 맞는 금융위의 규제 샌드박스 사업 1호가 이 은행의 알뜰폰 사업이다. 2년간 특례를 받아 운영해온 사업은 4월 심사를 통해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이를 앞두고 은행 노조가 나서서 반대하는 아이러니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업점 직원들이 판매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이유다.

2019년 12월 첫발을 내디딘 리브엠은 금융권에서 처음 시도하는 통신사업이어서 주목받았다. 보수적인 은행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드문 사례였다. 최신 휴대폰 기종으로 무제한 데이터를 쓸 수 있으면서 반값 요금제, 비대면 셀프 개통 시스템, 무료 보험 서비스 등 혜택도 많았다. 은행 전용 유심을 장착해 휴대폰으로 금융 업무를 손쉽게 볼 수 있게 한 점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됐다. 출범 당시 은행은 2년 내 100만 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실제 가입자 수는 목표의 10분의 1에도 채 못 미쳤다. 은행에 따르면 3월 기준 가입자 수는 9만3500명에 그쳤다. 이 중 영업점을 통해 직접 가입한 고객은 전체의 1%에 머물렀다. 비대면으로 본인 확인을 하기 어려운 고객(신용카드 미소지자, 미성년자)의 가입을 영업점에서 도와준 경우도 10%에 그쳤다.

기대를 모았던 사업이 표류하게 된 건 노조의 반발 탓이 컸다. 노조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리브엠 사업을 중단하라’는 1인 시위를 이어왔다. 담당 임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은행은 영업점을 통한 마케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통신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어 가입자의 만족도가 높은 사업”이라면서도 “노조 반발이 워낙 심해 제대로 판매에 시동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빅테크(대형 IT기업)의 부상으로 업권 간 경계가 허물어져 은행도 변신하지 않으면 미래 생존 여부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라며 “금융상품 판매 이외의 일을 못하겠다고 무조건 반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밥그릇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은행 측은 노조의 반발 때문에 알뜰폰 사업이 혁신사업으로 재지정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만약 노조의 뜻대로 사업이 취소된다면 직원들에게 득일까. 가입자 10만 명이 ‘낙동강 오리알’이 되더라도 제 밥그릇만 챙기면 된다는 모습에도 소비자들이 계속 은행을 신뢰할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