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피아노 건반은 왜 88개일까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의 건반악기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세게 눌러도 음을 크게 낼 수 없었다. 그때는 건반 뒤에 연결된 현을 뜯어서 소리를 냈다. 1709년 해머로 현을 두드리는 방식의 피아노가 나온 뒤에야 음의 강약 조절이 가능해졌다. 피아노를 ‘악기의 황제’로 부르는 것은 거의 모든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 발명자는 이탈리아 악기 제작자 크리스토포리다. 그는 자신이 만든 피아노에 ‘피아노포르테(Pianofort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어로 ‘부드럽고 강하게’라는 뜻이다. 그만큼 음량 조절이 자유롭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건반이 54개뿐이었다.

모차르트가 살던 18세기 말 건반이 61개로 늘어났고, 쇼팽과 리스트가 활동하던 19세기에는 82개로 더 늘었다. 지금의 88개가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은 1900년 이후다. 예외적으로 독일 뵈젠도르퍼사가 저음부 9개를 추가한 97개 건반을 선보이긴 했지만 보조용으로만 쓸 뿐 그 자체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피아노 건반이 88개인 이유는 사람의 청각범위와 관련이 있다.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 영역은 약 20~2만㎐다. 이 가운데 뇌가 구별할 수 있는 최고 주파수는 4000㎐에 불과하다. 여기까지의 음역(27.5~4186㎐)을 연주하는 데 최적의 건반 수가 88개다. 더 이상 건반 수를 늘려야 잡음으로만 들린다.

‘세계 피아노의 날’도 피아노 건반이 88개인 것에 착안해서 한 해의 88번째 날을 택했다. 독일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닐스 프람이 2015년 피아노 음악 전파와 발전을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 2월이 ‘큰 달’이었던 지난해에는 3월 28일, 올해는 3월 29일이다.

이를 기념해 조성진과 이루마, 랑랑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17명이 그제 온라인에서 약 2시간50분 동안 마라톤 공연을 펼쳤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을 연주했고, 랑랑은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2번’, 조성진은 쇼팽의 ‘즉흥곡 1번’을 들려줬다. 도이치그라모폰이 유튜브 채널로 공개한 이 공연은 31일 밤 11시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다.

세계 피아노의 날은 공교롭게도 한국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날과 비슷하다. 미국 선교사 사이드보텀이 아내를 위해 대구에 피아노를 들여온 날은 1900년 3월 26일이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