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어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만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재차 확인한 반면 북한은 추가 도발 협박을 했다. 정상 간 ‘톱다운 회담’에 기대를 걸고 미·북 간 중재 의지를 밝혀 온 한국 정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판국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그(바이든)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톱다운 협상을 선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조건 없이 회담부터 갖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찍이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대해 “세 차례나 하고도 확고한 약속은 하나도 받아내지 못했다”며 “TV용 쇼”라고 비판한 바 있다. 게다가 김정은을 ‘독재자’ ‘폭군’으로 지칭하는 등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이행할 것이라는 판단이 서야만 북한과의 대화를 검토할 것이라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며 알맹이 없는 미·북 싱가포르식 회담 개최에 매달리는 것은 확 달라진 국제기류를 오독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가 이뤄낸 성과가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싱가포르 합의는 현재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북정책 지우기’에 나선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트럼프식 정상회담에 나서라는 엉뚱한 주문을 한 꼴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해선 한없이 너그럽다. 어제만 해도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겨냥, ‘미국산 앵무새’ ‘철면피’ 등 또 막말을 퍼부었는데도 단순히 유감 표명에 그쳤고, 북한의 도발 협박에는 경고 성명 하나 없다. 김여정이 탄도미사일이라고 인정한 판에 우리 군은 여전히 ‘분석 중’이다. 어떻게든 남북한 또는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보려는 의도겠지만 미·북의 입장을 고려할 때 원칙 없는 톱다운 회담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번 주 미국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가 열린다. 회의 전부터 미국이 3국 협력을 강조하는 마당에 ‘트럼프식 쇼’를 권했다간 자칫 동맹 파열음만 키울 뿐이다. 지금은 한·미·일의 강고한 대북 3각 공조체제 구축에 공을 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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