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뉴욕, 로스앤젤레스(LA)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건축물들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많은 건축가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 ‘현대 건축의 도시’로 불리는 이 도시는 바로 시카고다.

시카고가 현대 건축의 도시가 된 계기는 1871년 발생한 대화재였다. 대화재 이전 시카고의 건물은 대부분 목재 건물이었다. 어떻게 화재가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져 대부분의 목조 건축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결과 강변을 중심으로 조성됐던 도심 지역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화재가 휩쓸고 지나간 뒤 재건 사업이 시작됐으며, 이것이 19세기 후반 시카고가 현대 건축의 도시로 재탄생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대화재 경험을 계기로 목조 대신 불에 잘 타지 않는 석조와 강철이 주로 사용되면서 건축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시카고가 대화재의 아픔을 씻고 일어나는 것을 돕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건축가들이 찾아와 시카고 재건에 힘을 보탰다. 유명 건축가들이 거대 자본의 뒷받침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작품을 남기면서 시카고는 건축가들의 도시, 현대 건축의 도시가 된 것이다.

시카고의 사례는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은 좋은 예다. 소설가 이외수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을 비웃지 마라. 그가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본다.

외양간을 고치는 가장 적절한 때는 소를 잃을 위험이 감지되는 순간이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면 실패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재난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일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인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내가 재직하고 있는 예금보험공사도 저축은행 부실 사태라는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외형을 확장하던 다수의 저축은행이 2011년 부실화되면서 예금보험공사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5년간 27조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당시 열심히 번 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들이 저축은행 앞으로 몰려왔던 모습은 아직도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기 위해 예금보험제도를 개선해 왔다. 부실금융회사 정리제도를 정비하고, 금융회사 위험에 따라 예금보험료를 다르게 부과하는 차등보험료율제를 도입해 금융회사의 건전 경영을 유도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이 제고된 덕분에 오늘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그 원인을 파악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할 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