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냄새와 향기

“여전히 피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쏟아부어도 조그만 손에 밴 냄새를 지우지 못하는구나….”(셰익스피어 《맥베스》 5막 1장)

권력욕에 눈멀어 던컨왕 살해에 가담했던 맥베스 부인은 ‘냄새’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떠올린다. 진홍빛 선혈의 선명한 인상도, 단도가 살을 파고들 때 전해진 거친 떨림도 피비린내 앞에서 힘없이 압도된다. 더 진한 냄새로 기억을 지우려 해봐도 소용이 없다.

기억은 냄새와 얽혔을 때 더 강렬하게 각인된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빵가게의 달콤한 향기,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저녁밥 내음, 첫사랑의 아련한 샴푸향까지 후각과 연관된 기억은 감정적으로 증폭돼 다가온다. 외국 공항에 내렸을 때 전해오는 독특한 체취만큼 방문국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도 없다. 이런 현상을 지칭하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한 장면에서 딴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는 용어도 있다.

냄새와 기억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이유는 인간의 뇌가 냄새를 인식하는 구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코의 후각수용체가 접한 냄새 정보는 뇌의 시상(視床)에 전달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편도체로도 전송된다. 짜릿한 사건의 기억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4000여 가지의 냄새라는 정서와 함께 뇌리에 깊이 새겨진다.

냄새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뛰어난 성취는 냄새에 빗대 표현되곤 했다. 좋은 글을 접하면 ‘글에서 향기가 난다(文字香)’고 읊었고, 무색무취한 예술품에서도 ‘향취(香臭)’를 느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면 ‘사람 냄새가 난다’고 했다. 부도덕한 일, 중대한 범죄 현장도 ‘악취가 진동한다’며 후각적으로 묘사됐다.

냄새를 느끼는 게 주관적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향기’가 다른 이에겐 ‘악취’가 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불거진 ‘냄새 논쟁’도 그런 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해 “향기를 느낀다”고 표현하자 야당이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박 전 시장이 여직원에게 ‘냄새를 맡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던 전력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 씨가 위안부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해 “냄새가 난다”고 자극했던 이력도 연상작용을 더했다. 춘삼월에 꽃향기가 아닌 ‘냄새 논쟁’만 기억 속에 남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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