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의 사업장 출입을 허용하고 파업 시 사업장 점거도 가능하게 만든 노조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영계가 크게 반발했지만, 후속 시행령에서도 사측의 대항권 보장을 위한 내용은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어제 입법예고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이 해고자가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사업장을 드나들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제5조 2항)은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이 가능토록 했다. 하지만 ‘효율적인’이라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남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에 경영계는 시행령에서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고용부는 “기업 특성에 따라 달리 적용돼야 할 문제로,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렵다”며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노사가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일률적으로 정하는 게 어렵다면 애초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 허용 여부도 노사합의로 남겨두지 왜 법으로 정했나.

‘갈등 예방’도 앞뒤가 안 맞는다.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사업장 출입과 점거까지 가능하게 만든 개정 노조법 자체가 불필요한 노사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행령에서나마 갈등 소지를 줄여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이를 방기해놓고 갈등 예방 운운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 모든 문제는 지나치게 노조에 기운 노조법 개정에서 비롯됐다. 당초 정부안에는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 제한,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이 포함됐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 요구는 대폭 반영된 반면, 경영계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 그러니 시행령이라고 경영계 호소가 반영될 리 만무한 일이었다.

지금 세상은 AI(인공지능) 혁명으로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 기업 경영과 노사관계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와중이다. 그런데 개정 노조법은 ‘투쟁’ 위주 노동운동 시대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대선판을 흔든다며 11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여당은 한국노총과 정책협의회를 열고 선거 공조를 다짐한다. 철 지난 ‘노정(勞政) 연대’가 한국에선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12개월 연속 취업자가 줄고 실업자 수는 거의 매달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것이 경기 부진이나 코로나 탓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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