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아 나랏빚을 늘려도 괜찮다는 여권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지적이 국책연구원에서 제기돼 주목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GDP 대비 한국의 채무비율은 4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달러·유로 등을 쓰는 기축통화국을 제외한 14개 비기축통화국(41.8%)보다 높았다. OECD 전체 평균(65.8%)보다는 낮지만,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을 미국·일본 등 기축통화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보고서 요지다.

조세연은 비기축통화국이 채무가 급증할 경우 기축통화국과 달리 ‘리스크 프리미엄’ 증가와 수요 부진으로 인한 이자율 상승, 재정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여당이 한국을 기축통화국과 같은 선상에 놓고 채무비율을 60%까지 높여도 된다고 강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조세연의 경고대로 한국의 채무가 단기간 과속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말 36%(670조원)에서 올해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까지 포함하면 48.2%(965조9000억원)로 올라간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이미 약속했고, 내년 대선을 감안할 때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넘길 수도 있다. 기획재정부도 2024년 부채비율이 59.7%(1347조8000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4월 재·보선과 내년 대선을 겨냥해 빚으로 국민의 환심을 살 궁리만 하고 있다. 대선주자들부터 기본소득, 이익공유제, 코로나 손실 보상 등을 내세워 돈 뿌리기 경쟁에 앞장선다. 수십조원 퍼붓기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수준이니 ‘고무신 선거’가 울고 갈 정도의 ‘신종 매표(買票)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지경이다. 자기들이 봐도 재정이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고 느꼈는지, 여당 일각에선 급기야 증세론이 나오고 있다. 돈 뿌리기 공약으로 잔뜩 생색내면서 부담은 국민에게 떠넘기겠다는 심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