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컴퓨터게임 전락한 군사훈련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 포위된 독일 6군단 소속 고트프리트 폰 비스마르크 중위는 항공기 편으로 베를린에 급파돼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30만 대군이 전멸 위기에 처했다’는 보고에도 시큰둥하던 히틀러의 등 뒤엔 병력이 궤멸돼 이름만 남은 사단들이 빼곡히 표시된 지도가 걸려 있었다. 나치가 여전히 유럽 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듯이….

매번 훈련을 실전처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전쟁의 발전 과정에서 ‘도상(圖上)훈련’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유혈이 동반되지도, 물리적 피해를 야기하지도 않을뿐더러 비용도 적게 들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독일 군사학교들은 전장의 지형지물을 축소해 만든 ‘모래상자(잔트카스텐)’로 전략·전술을 가르쳤다. 이후 체스나 보드게임을 하듯 작전실에서 장군들이 부대를 ‘지휘’하는 것은 낯익은 장면이 됐다.

문제는 ‘지도 위’와 ‘실전 현장’에는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한방 처맞기 전까진”이라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말처럼, 현실에서 대면한 적은 상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때론 아군이 적군보다 무서웠다. 미드웨이 해전에 앞서 일본군이 행한 ‘시뮬레이션’에서 미군 역할을 맡은 일본군 장교들이 자국군을 궤멸시키자 돌아온 것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비난이었다.

작전이 구현되는 전장과 작전실 간의 괴리는, 고성능 컴퓨터와 훈련전용 프로그램이 동원되는 현대의 ‘워 게임’이라고 해서 크게 좁혀지지 않는다. 피와 살이 튀는 고난을 감내하고, 적진을 돌파하는 것은 컴퓨터가 계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대규모 부대가 실전처럼 움직이는 것이 군사훈련의 ‘본질’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 원칙이다.

18일까지 진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이 야외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이뤄진다고 한다. 코로나 확산에 북한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3년 연속으로 병사들이 필드에 나서지 못하는 데다 올해는 ‘반격훈련’ 없이 ‘방어훈련’만 한다니 군의 전투 준비태세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 병력·장비를 동원하지 않은 채 컴퓨터 모의실험만 해서는 ‘의자 위 장군(armchair general)’과 ‘서류상 군대’만 나올 수밖에 없다. 총도 못 쏘는 군대에 안보를 의지해도 될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