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탈(脫)원전 정책을 수사하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에 최재형 감사원장이 또 한번 ‘소신 발언’을 해 주목을 끈다. 최 원장은 그제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에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과 탈원전 정책 수립과정의 절차적 타당성에 대한 감사와 관련, “대통령 공약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행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맞받아친 것이다. 그는 “공약한 사항의 정책 수행은 제대로 하는 게 맞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행정행위는 법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국가, 법치국가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이자 당연한 원칙이다.

감사원의 월성 1호기 감사는 최 원장도 언급했듯이, 탈원전 자체가 아니라 조기폐쇄 근거로 삼은 경제성 평가 과정이 적법했는지를 들여다본 것이다. 그런데도 여권은 감사원이 마치 탈원전 공약 자체를 건드리는 양 왜곡되고 오도된 비판을 가해왔다. 대통령 복심(腹心)이라는 의원은 “대선 공약인 월성 1호기 폐쇄 정책을 감사·수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비난했고, 실세라는 전직 대통령비서실장은 “집을 지키라고 했더니 안방을 차지하려 들고 주인행세를 한다”고 몰아붙였다. ‘선출된 권력’이 나라 주인이고, 감사·수사기관을 정권의 충견(忠犬)쯤으로 여기는 오만과 독선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서 공무원들의 허위 진술, 증거 인멸 등이 여실히 드러났다. 묵과할 수 없는 범죄임에도 여권은 ‘탈원전 정책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라며 되레 적반하장식으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를 부정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탈원전은 위법 여부를 따질 수 없는 대통령 ‘통치 행위’라는 권위주의적 발상은 귀를 의심케 한다.

공약을 정책화한다고 해서 법을 무시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게 반(反)민주요, 반법치가 아닌가.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촛불을 든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어떤 경우든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이 보편타당하게 적용될 때라야 비로소 그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감사원장의 지당하고 상식적인 발언이 ‘뉴스’가 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