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기차 못 팔았다고 수백억 벌금 물리는 정부
“시장 경쟁에서 밀렸다고 벌금까지 내게 됐습니다.”

정부가 최근 완성차 업체에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할당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기여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업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친환경차를 팔고 싶어도 소비자가 선택해주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환경부는 지난 18일 하이브리드차 등 저공해차 보급 목표를 지난해 업체별 판매량의 15%에서 올해 18%, 내년 20%로 올리기로 했다. 전기차, 수소차 등 무공해차 보급 목표도 신설했다. 올해는 판매량의 10%로 정하고 내년엔 12%로 상향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지키지 못하면 기여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저공해차 보급 목표제가 전면 시행된 지난해 목표를 달성한 업체는 70%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 중 하나는 ‘테슬라 돌풍’ 때문이다. 테슬라 모델3는 지난해 1만1003대 팔리며 시장을 휩쓸었다. 2위 현대차 코나EV(8088대), 3위 기아 니로EV(3138대)를 더한 것과 비슷한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에 밀려 상당수 업체가 저공해차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경쟁에서 진 것도 답답한 상황에서 벌금까지 내야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내놔야 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벌칙까지 받는 것은 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소비자 트렌드 변화도 보급 목표 달성을 어렵게 했다. 최근 선호도가 높아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주력했다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보급 목표 미달 기여금이 ‘이중 벌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미 자동차 온실가스 관리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완성차 업체에 과징금을 매기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은 약 4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야 할 처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차를 많이 팔지 못했다고 벌금,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다고 또 벌금을 내라는 식”이라며 “탄소 중립이라는 같은 정책 목표를 놓고 두 가지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과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차량 온실가스 규제를 두고 있다. 그러나 국가 단위에서 친환경차 판매 목표제까지 도입한 곳은 중국 정도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州)만 판매 목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엔 테슬라가 있다. 지역 산업 육성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로, 우리나라와 맥락이 다르다.

전기차 판매 확대에 결정적 걸림돌도 있다. 충전 인프라다. 국내 전기차 충전기 수는 2019년 말 기준 중국의 0.8%, 미국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수소 충전소도 일본의 3분의 1 수준으로 소비자 불편이 크다. 벌금을 매기는 것보다 인센티브를 통해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부터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