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 뒤에 땅·얼음 녹듯…

겸손(humility)·인간(human) 어원은
낮은 곳 뜻하는 라틴어 '흙(humus)'

교만할 교(驕)는 '말(馬)+높을 교(喬)'
거만할 만(慢)은 눈 치켜뜬 모습

조선 최고 정승 황희·맹사성도
자신 낮추는 정치로 名재상 올라

고두현 논설위원
[고두현의 문화살롱]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시간"

언 땅이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경기 파주 임진강변 반구정(伴鷗亭)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이 정자는 조선 명재상 황희(黃喜·1363~1452)가 86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른 봄볕에 한가로이 쉬는 갈매기들의 날개가 다소곳하다. 깃털을 건드리는 바람결도 한결 부드럽다.

황희는 세종 때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을 합쳐 24년간 정승을 지냈다. 이렇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과 겸손의 덕을 함께 갖췄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몸을 낮췄다. 관노였던 장영실을 과학자로 관직에 올리고, 노비의 아이가 수염을 잡아당겨도 마음 좋게 웃어 ‘허허 정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딱 한 사람, 6진 개척과 여진족 정벌에 앞장선 김종서에게만 예외였다. 북방에서 복귀한 김종서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는 걸 보고는 “저놈 의자 다리가 한쪽 망가진 모양이니 고쳐줘라”고 따끔하게 혼냈다. 자기 뒤를 이을 재목으로 점찍은 김종서에게 겸손을 가르치려고 일부러 엄하게 대한 것이다.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황희(왼쪽)는 겸손한 자세와 치우침 없는 몸가짐으로 24년간 정승을 지냈다. 같은 시대의 청백리 맹사성도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 리더십’으로 존경을 받았다.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황희(왼쪽)는 겸손한 자세와 치우침 없는 몸가짐으로 24년간 정승을 지냈다. 같은 시대의 청백리 맹사성도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 리더십’으로 존경을 받았다.

황희와 함께 조선 명재상 ‘투톱’으로 꼽히는 맹사성(孟思誠·1360~1438)도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는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공복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이고 돌아갈 때도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이런 자세는 젊은 시절 한 고승에게 배운 것이다. 그는 고승에게 목민관의 도리를 물었다가 “나쁜 일 말고 착한 일만 하라”는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에 고승은 찻잔 가득 넘치도록 차를 따르면서 “찻잔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라고 했다. 당황한 그가 황급히 일어서다 문틀에 부딪혔다. 그러자 고승이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라고 했다.

겸손은 사람됨의 근본이다. 한자로 겸손할 겸(謙)은 말씀 언(言)과 겸할 겸(兼)을 결합한 글자다. 겸(兼)은 벼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형상으로 ‘아우르다’ ‘포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격과 소양을 두루 갖춘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말을 공손하게 하는 법이다. 겸손할 손(遜)은 ‘후손에 전하다’의 뜻을 함께 지녔으니 대를 잇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영어 단어 겸손(humility)의 어원은 흙을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다. 흙 중에서도 영양분과 유기질이 많은 부식토다. 사람(human)이라는 단어도 흙에서 유래했다. 겸손은 흙에서 나온 사람을 성장시키는 토양이다.

겸손의 반대어인 교만(驕慢)은 잘난 체하고 뽐내며 건방지다는 말이다. 교만할 교(驕)는 말 마(馬)와 높을 교(喬)로 이뤄져 있다. 말을 높이 타고 아래를 얕잡아본다는 의미다. 병법에서도 교병필패(驕兵必敗)라고 해서 교만한 병사는 적에게 반드시 패한다.

거만할 만(慢)은 마음 심(心)과 ‘손으로 눈을 벌려 치켜뜬’ 모습의 끌 만(曼)을 합친 것으로, 눈을 부라리는 태도를 가리킨다. 영어 거만(haughtiness)이 프랑스어 ‘높은(haut)’에서 왔고, 라틴어 어원 도 ‘높은(altus)’이니 겸손과 상반된다.

올해 출간 110주년을 맞은 소설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는 그래서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명언처럼 낮은 자세로 겸손을 체득한 사람만이 그 비옥한 토양에서 성공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나이만 먹고 교만한 사람은 ‘어른 아이’ 증후군에 갇히고 만다.

그러고 보니 성공(success)이란 말도 ‘흙을 뚫고 나온다’는 뜻의 라틴어 수케데레(succedere)에서 왔다. 흙에서 씨앗이 뚫고 나오는 것이 곧 성공이다. 겸손의 땅에 뿌린 씨앗이 더 잘 자란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와 선거를 연거푸 앞둔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을 보면서 겸손과 인간, 흙과 뿌리의 근본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얼음 풀린 강 언덕의 반구정 뜰에 앉아 부드럽게 흙 모이를 쪼는 갈매기들의 뒤태가 사뭇 겸허하다.
"위대한 정치가와 CEO들은 아주 겸손하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시간"

탁월한 지도자의 덕목에는 반드시 ‘겸손’이 포함된다. 교육자이자 작가인 케빈 홀이 언어학자 아서 왓킨스와 함께 쓴 책 《겐샤이》에 따르면 리더(leader)의 ‘리(lea)’는 ‘길(path)’, ‘더(der)’는 ‘발견하는 사람(finder)’을 의미한다.

지도자는 ‘길을 앞서 발견하는 사람(pathfinder)’이다. 신호와 단서를 읽고 길을 발견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곧 진정한 리더다.

리더십과 인력개발 전문가 그룹인 미국의 호건 어세스먼츠는 다양한 인성분석 자료를 취합한 결과 “최고의 리더는 겸손한 리더”라고 평가했다. 이 회사의 세 가지 질문이 눈길을 끈다.

“나는 업무에 관한 다른 사람의 조언을 고마워하는가?”, “내가 이룬 성과를 누군가가 무시하면 언짢은 감정이 드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은 존경받지 못하는 걸까?”

첫 번째 질문에 “네”라고 답하는 사람은 겸손한 리더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답하는 사람이 겸손한 리더다.

결국 겸손한 리더란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남에게 지식과 조언을 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칭찬하며, 동료나 부하의 성취를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도 “위대한 정치가와 최고경영자(CEO)들은 아주 겸손하다”고 말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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