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를 덮친 기록적 한파로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혹한과 폭설로 일부 발전소가 멈추면서 4만5000㎿ 용량의 전력 공급이 끊긴 탓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추위로 다수 공장이 멈추고 380만 가구가 촛불로 밤을 밝히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충격적이다.

이번 사태는 한파가 원인이었지만 급격하게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 주(州)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텍사스는 기존 원전 4기에 2기를 추가하려던 계획을 철회한 대신 풍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크게 늘렸다. 그 결과 발전원(源)별 비중이 천연가스 52%, 재생에너지 23%, 석탄 17%, 원전 8% 등이 됐다.

문제는 끊긴 전력 중 풍력이 33%에 달한다는 점이다. 추위로 터빈이 얼어붙은 탓이다. 텍사스는 최근 10년 새 풍력을 3배 가까이 늘렸지만 강추위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풍력 태양광 등은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없어 의존도가 커질수록 전력망 신뢰도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텍사스 사례는 탈(脫)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재생에너지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높인다지만 발전량이 일조량이나 바람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커지면 전력공급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

특히 48조5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를 짓겠다는 신안 앞바다의 경우 풍속과 바람의 지속성 면에서 유럽의 해상풍력단지가 몰려 있는 북해보다 입지면에서 유리하다고 보기 힘들다. 게다가 최근 한겨울에는 남해안과 제주도까지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잦은데, 만약 예상 못 한 한파가 몰아닥치면 해상풍력기 전체가 가동 불가 상태가 될 수도 있다.

텍사스 정전 피해가 그나마 이 정도에 그친 것은 3개 원전이 100% 출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 견해다. 2017년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했을 때와 2019년 미 북서부에 한파가 몰아닥쳤을 때도 원전은 정상 가동됐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대처에는 날씨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탄소 배출도 미미한 원전만 한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 정부는 탈원전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탄소 중립’ 정책과도 배치된다. 한국은 비상시 이웃 나라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게 불가능한 ‘에너지 섬’이다. 기후변화 대처와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도 탈원전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