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공교육 살려야 미래 열린다
새 학기 시작을 코앞에 두고 이번에는 등교할 수 있을지가 학부모들의 초미의 관심사지만 아직 교육부는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은 ‘전쟁 때도 학교를 열던 나라에서 이게 웬일이냐’고 한탄한다고 한다. 대면 수업의 긴급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학부모와 교사들은 국민 건강 안전이라는 명분에 눌려 찍소리 못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얼마나 심각하게 표류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지만 정부는 꼼짝도 안 하고 있다. 우리와 똑같이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일본의 학교 문은 열려 있다는데 왜 우리 교문은 굳게 닫힌 것일까. 특히 학부모에게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신 성적과 입시에 행여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교육 현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서울 강남에 사는 아이들은 줄넘기까지 과외수업을 받는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았더니 사실이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교육이 여전히 계층 이동이나 유지에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교육을 국가가 거의 손 놓고 있다. 현재 우리 학교 교육은 입시 등의 중요한 과제를 거의 사교육에 넘겨버렸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판단이다. 이것은 역대 모든 정부의 책임이지만 정의와 공정을 입에 달고 사는 문재인 정부는 더 큰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입시는 경쟁과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일부 사람은 경쟁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은 인간 본성을 무시하는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문제는 능력을 만들어내는 요소다.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결정되면 공정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타고난 재능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부모를 넘어 조부모의 재력과 같은 여러 요소가 능력을 치장해준다.

물론 태어날 때 환경만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복합적이어서 수많은 요인이 삶의 경로에 작용하며 그 가운데 가족 배경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태어난 환경이 일단 삶을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해진 마이클 샌델 교수도 최근 미국 교육 제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했지만 딱히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샌델이 제시한 것은 엘리트대학 신입생을 뽑을 때 일부를 추첨제로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 역시 공정성 시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판은 쉽지만 해결책을 찾는 건 어렵다.

당장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법은 무엇일까. 공교육을 살리는 일이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아이들이 진학에서 불리하지 않게 만드는 것, 사교육에 넘겨버린 과제를 공교육이 다시 맡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한때 그랬듯 존경받는 지성인의 역할을 할 진정한 선생님을 확보하는 일이다. 형식적 임용고시를 벗어나 ‘소명의식을 가진 실력 있는’ 교사들을 확보하고, 그에 걸맞은 봉급을 보장하고, 지속적인 재교육과 연구년 등을 도입해 역량을 유지하게 하는 일이다. 인터넷 강의가 대세인 시대에 낡은 시대의 관점일 뿐이라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어제 교육부가 야심 차게 발표한 고교학점제도 결국 교사 역량에 성패가 달려 있다. 제도는 제도일 뿐 그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참으로 나라를 뒤흔들 거대한 작업이고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국민 모두의 지혜를 구해 누군가가 반드시 해내야 한다. 고소득 집안 아이들이 소위 스카이대학 학생들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공교육이 살아나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부동산과 출산율 문제도 많은 부분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자기 자식은 특목고나 외국 학교에 보내면서 남의 자식은 개천에서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라고 윽박지르는 장관들이 득실거리는 현 정부에 기대할 사안은 아니니 다음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교육 문제에 대해 가장 현명한 제안을 하는지 살펴야 한다. 아니, 당장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들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공교육을 살리는 일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