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산업 통계 달랑 1개뿐
美·中·日에 '기본기'부터 뒤진 꼴

김진원 IT과학부 기자 jin1@hankyung.com
[취재수첩] AI산업 58조 투자? 통계가 먼저다

“한 끗? 그런데 5억을 태워?” 영화 ‘타짜’에서 조직폭력배 두목 곽철용은 지리산에서 내려온 고니에게 패한다. 도박장을 떠나기 전, 곽철용은 고니의 화투패를 물어본 뒤 ‘한 끗(화투 노름 ‘섰다’에서 가장 낮은 패)’에 밟혔다는 사실에 분해한다. 영화는 한 끗에 5억원을 건 고니의 승부사 기질에 초점을 맞춰 이어진다. 하지만 고니가 거액을 근거 없이 낮은 패에 베팅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책연구기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최근 내놓은 ‘주요국 통계 현황 비교를 통한 국가 AI산업 통계 체계 발전방안’ 보고서를 읽던 중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국 인공지능(AI)산업과 관련한 기초통계가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 하나뿐이라고 밝힌 대목에서다. 비유가 지나친 것일까.

정부는 지난 1월 한국판 뉴딜의 핵심 축인 ‘디지털 뉴딜’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AI 분야에 58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매머드 플랜이다. AI산업을 융성시켜 차세대 먹거리로 삼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숫자다. 사전 리서치와 통계 등을 기반으로 촘촘히 설정된 전략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러나 관련 통계는 달랑 한 개뿐이었다. 그것도 국책연구기관이 스스로 밝힌 수치다.

AI 선진국들은 어떨까. 양만 놓고 보자. SPRi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20년 글로벌 AI 실태조사’ 등 12개로 가장 많았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연합(EU) 국가가 ‘유럽의 AI’ 등 6개, 일본이 ‘AI가 직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조사’ 등 6개로 뒤를 이었다. 중국이 ‘중국 기업2020: AI 순익 보급 및 확산 백서’ 등 4개로 가장 적었다.

질 좋은 통계라면 굳이 수를 탓할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 통계는 AI 기술 공급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을 조사하는 등 일반적인 자료에 집중돼 있다. 반면 미국와 유럽, 일본, 중국은 ‘AI 활용 현황’부터 ‘인공지능 활용이 미치는 영향’ ‘AI 관련 인식’ 등으로 입체적이다. 조사 대상도 스타트업, 중앙정부, 전문가부터 일반 국민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양과 질에서 모두 밀리고 있다는 얘기다. SPRi는 이렇게 지적했다.

“주요 경쟁국은 다양한 측면에서 AI 활용 현황과 인식 수준을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데 실제 각 분야에서 AI가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수요자(개인 또는 기업)의 인식은 어떤지 현장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통계법 제2조가 정의한 통계의 기본이념을 압축한다면 ‘나침반’일 것이다.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공자원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의성을 확보해 작성하고 널리 보급·이용돼야 한다.” 장도에 오르기 전, 무엇이 빠졌는지 다시 챙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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