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업인들의 못 말리는 야구사랑
한국 최초의 프로야구단인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창단 주역은 두산그룹의 고(故) 박용곤 회장이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에 심취했던 그는 1982년 1월 15일 가장 먼저 창단식을 하고 초대 구단주를 맡아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야구사랑은 아들인 박정원 현 두산그룹 회장으로 이어졌다. 고려대 야구 동아리에서 2루수로 활동한 박 회장은 귀빈석이 아니라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며 환호성을 지르곤 한다.

LG그룹에서는 고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고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3형제가 모두 ‘야구인’이다. 구본무 전 회장은 전지훈련장까지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시즌마다 경남 진주 단목리 외가에서 잔치를 베풀며 팀 사기를 북돋웠다.

삼성그룹의 고 이건희 회장도 젊은 시절 일본 유학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삼성 라이온즈 초대 구단주를 맡아 선진 야구기술 접목과 아마야구 저변 확대에 나섰고, 초·중·고 야구대회로 이승엽 배영수 같은 꿈나무를 키웠다.

NC 다이노스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어릴 때 만화 ‘거인의 꿈’을 보며 꿈을 키웠다. 빠른 볼을 잘 던지려고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닐 정도였다. 그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관람하고 우승 세리머니를 위해 ‘집행검’까지 만들어 팬들 사이에 ‘택진이 형’ 열풍을 일으켰다. 데이터 기반 기술력을 활용해 팀 전력을 분석하는 ‘D-라커’도 개발했다.

어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하루 종일 기업인들의 야구사랑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에도 정 부회장은 “앞으로 유통업의 경쟁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며 프로야구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기업인들이 유난히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경영학자들은 “야구가 철저하게 분업화된 조직 스포츠라는 점에서 기업경영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모든 플레이 하나하나가 숫자로 계량화되고, 이에 따라 구단과 개인의 성과가 평가된다는 점도 실적 중심의 기업경영과 비슷하다.

신세계의 등장으로 롯데 자이언츠와의 ‘유통 더비’, 삼성 라이온즈와의 ‘범(汎)삼성가 대결’, 김택진의 NC 다이노스와 펼칠 ‘젊은 리더십 대전’ 등이 관심을 끌 것 같다. 벌써부터 명승부가 기대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