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문에게
을지문덕

신비로운 계책이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듯하고
기묘한 계략은 땅의 이치를 다 아는 듯하네.
싸움에서 이긴 공 높고도 높으니
만족할 줄 알고 이제 그치는 게 어떠한가.

與隋將于仲文詩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을지문덕 : 고구려 영양왕 때의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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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살수대첩을 앞두고 적군인 수(隋)나라 장수 우중문(于仲文)에게 보낸 시다. 적장을 한껏 치켜세우면서 이제 그만큼 공을 세웠으면 됐으니 돌아가는 게 어떠냐고 종용하는 내용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한시이기도 하다.

1400년 전의 고구려 벌판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서기 612년, 수나라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하러 출발했다. 전투병만 113만 명이었다. 수양제는 엄청난 규모의 수륙양군으로 고구려를 초반에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육군이 고구려의 관문인 요동성을 먼저 공격했다. 그러나 난공불락이었다. 몇 달을 공격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뒤 패강(浿江:지금의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성을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양제는 외곽을 치려는 전략을 버리고 곧바로 평양성을 함락하기 위해 우중문과 우문술을 사령관으로 세우고 30만5000명의 별동대를 투입했다.

수나라 별동대가 진격해오자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항복하면서 적군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갔다. 당시 그의 명성은 대단해서 수양제가 우중문에게 ‘고구려 영양왕과 을지문덕을 만나면 반드시 사로잡아 오라’는 밀지를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우쭐해진 우중문은 밀지를 잊어버리고 을지문덕을 놓아주었다. 그 사이 을지문덕은 수나라 병사들이 지친 상황을 간파했다.

적정을 눈으로 확인한 그는 수나라 군대를 더욱 지치게 만들려고 유인작전을 세웠다. 『수서』에 ‘수나라 군대가 하루 일곱 번 싸워 모두 이기자 승리감에 도취되어 계속 진격했다’고 기록된 것처럼 그는 자꾸 패하는 척하며 적을 평양성 30리 안팎까지 유인했다.

수나라 군대가 보기에 이젠 평양성만 무너뜨리면 끝이었다. 그러나 평양성은 철옹성이었다. 게다가 군량미는 떨어지고 병사들은 기진맥진했다. 이때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이 시를 보내 ‘그만하면 됐으니 물러가라’고 타일렀다. 다시 한번 거짓으로 항복하면서 “물러가면 우리 왕이 너희 황제를 찾아가 뵙겠다”고 퇴각 명분까지 제공했다.

속으로 잘됐다 싶은 수나라 군대는 이를 명분 삼아 퇴각하기로 했다. 그들이 살수(청천강)에 이르러 무방비 상태로 강을 건너는 순간 뒤쫓던 고구려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그때의 상황은 ‘수나라 군대가 하루 사이에 450리나 도망쳤고, 30만5000명 가운데 살아남은 병사는 겨우 2700명뿐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살수대첩이다.

을지문덕은 전략과 전술에서도 우중문을 능가했지만 심리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그는 지략과 용맹을 갖춘 명장이면서 시문에도 뛰어났다. 7세기 무렵의 장군이라면 힘을 앞세우는 것만으로도 족했겠지만 그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장(智將)이었다. 상대를 욕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명분을 살려 칭찬까지 해가면서 전쟁을 끝내자고 제안할 줄 알았다.

마지막 구절은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는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한 것이니 그의 내공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그 속에는 ‘싸움을 끝내지 않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숨겨져 있다.

병법에 ‘명장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라고 했다. 을지문덕은 ‘좋은(good) 리더’를 넘어 ‘위대한(great) 리더’의 조건을 다 갖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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