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이익공유제는 정치공학일 뿐
이번엔 도대체 뭐가 나올까 궁금했다.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서 말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익이 많이 늘어난 쪽에서 돈을 거둬 피해를 본 쪽에 나눠주자는 이익공유제. 기발한 발상 아닌가.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올해의 정책 발명상을 주고도 남을 만하다.

이익공유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정부가 원조도 아니다. 보수 집권기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있었다.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초과이익공유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나온 이득공유제(나중에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그럴싸하게 이름이 바뀌었다), 기업소득환류세제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주장한 여권에서는 “과거 보수 정부도 썼던 정책인데 마치 이 정부가 무슨 사회주의라도 하자는 것인 양 호도하냐”고 역공한다.

말인즉슨 맞다. 사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보수 진보를 나눈다는 것부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가르마를 탈 만큼 철학과 이념이 뚜렷이 대비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 앞에서는 이념이고 뭐고 다 소용없는 게 현실 아닌가.

1970년대 경제쇼크를 겪던 미국에서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재정지출 확대에 열을 올리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공화당)조차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지언!(Now, we are all Keynesian!)”이라고 진보 행세를 한 걸 보면 우리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정부 때 초과이익공유제도 ‘양극화 해소’라는 그럴싸한 정책목표를 내세우며 나왔지만 본질은 따로 있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광우병 촛불시위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고 급기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당시 정부가 정책을 선회하며 내놓은 게 중도강화론이었다. 이른바 지지율 만회 작전이자, 표 확장 수단이었다. 그 결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위가 출범했고, 초과이익공유제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 FTA 이익공유제 역시 집권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안 나오자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출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놓은 정치공학적 슬로건 성격이 짙었다. 한·중 FTA 체결을 앞두고 농민단체 반발이 커지자 FTA 체결로 이득을 보는 기업들로부터 기금을 조성해 농어촌에 쓰자는 주장이었는데, 말이 자발적이었지 연간 1000억원을 10년간 모은다는 목표까지 정해둔, 사실상 강제 기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선례로 FTA 이익공유제를 언급하며 자발적인 모금이라고 했지만, 현 정부 출범 후 여당조차 국회 국정감사장에 기업인들을 불러 “왜 출연을 안 하냐”고 호통을 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어느 정부에서나 이익공유제는 정치적 슬로건이었지, 대단히 철학적·경제학적 고민 끝에 내놓은 정책이 아니었다. 그러니 논리를 따지고 들어가보면 온갖 허점이 가득할 수밖에…. 가령 코로나 국면에서 이득을 본 A기업이 100을 벌었을 때 코로나 반사이득이 얼마이고, 내부 혁신이나 투자 성과로 벌어들인 게 얼마인지 구분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배부른 자에게서 돈을 뜯어내 배고픈 자에게 나눠준다는 이른바 로빈후드식, 홍길동식 처방 앞에서는 아무리 치밀한 경제학적 반박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경제단체에서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5대 불가론을 조목조목 들어 반대해봤자 여권에서 꿈쩍 않는 이유다.

결국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애당초 허망한 일이다. 선거용으로 이만한 슬로건이 없는 만큼, 여당은 기업들의 반발에도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다가 선거용으로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면 슬그머니 발을 뺄 것이다. 우리 정치의 가벼움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