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개선에도 커지는 '공매도 폐지'
정치권은 공포심리 이용해 쟁점화

오형주 증권부 기자 ohj@hankyung.com
[취재수첩] '기울어진 운동장'된 공매도 논란

“기관의 공매도는 결국 개인이 맡긴 ‘고객 돈’을 갖고 하는 건데 왜 공매도는 개인에게 무조건 손해고 나쁘다고 보는 건지 의아합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공매도를 둘러싼 최근 논란이 선과 악을 가르듯 이분법적 구도로 흘러가는 게 안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3월 15일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 만료를 앞두고 조치의 추가 연장은 물론 아예 공매도 폐지를 요구하는 주장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까지 “공매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공매도 재개는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금융위원회에 추가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매도의 적정 시장가격 발견이나 거품(버블) 억제 등 순기능은 이미 학계 연구 등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전문가들은 불법 공매도 사례가 일부 있었다고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건 마치 ‘횡단보도 근처에서 사고가 나니 횡단보도를 없애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국에서 공매도는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하다는 의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공매도 제도가 몇 가지 허점을 드러낸 건 사실이다. 이에 당국은 지난해부터 불법 공매도 처벌과 감시 강화, 공매도 세력의 유상증자 참여 제한, 시장조성자 공매도 규제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이런 제도 개선은 작년 말 국회에서 여야 간 논의를 거쳐 합의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합의안이 도출됨에 따라 시장 상황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올 3월엔 공매도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해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돌파하고 개인 주식투자 열풍이 최고조에 이르자 공매도를 정치화하려는 시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치인들은 공매도가 재개되면 주가지수가 급락할지 모른다는 개인들의 공포 심리를 파고들었다. 공매도 재개를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연구자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공매도를 둘러싼 공론장은 삽시간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당국 안팎에서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여당이 압박하면 공매도 재개는 이번에도 물 건너갈 것”이라는 자조 섞인 관측도 나온다.

이렇다보니 공매도를 둘러싼 진지한 논의나 과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5월 공매도 연구 권위자인 이관휘 서울대 교수에 공매도의 시장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맡겼다. 용역이 벌써 마무리됐을 시점이지만 당국은 그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 교수 또한 논란에 부담을 느꼈는지 두문불출하고 있다. 쏠림 현상은 주식시장뿐 아니라 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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