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노년의 아름다움
많은 사람에게 늙어가는 것은 신나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오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지는 시기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다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 같다. 나 스스로 나의 늙은 모습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늙는 것을 거부하고 더 젊어 보이고자 하는 것이 삶의 목표처럼 된 시대적 유행병을 앓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노년에는 노년 때만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싱싱한 귤이 책상 위에서 뒹굴다가 수분이 빠져 쭈굴쭈굴하게 된 것을 봤다. ‘싱싱할 때보다 쭈글쭈글해진 지금의 귤 모습이 더 멋있다. 이렇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억지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억지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스쳐가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귤은 그렇다 치고 사람도 그럴까?’

사람은 귤과 다르게 똑같이 쭈글쭈글해진다고 해도 연륜이라는 것이 있어 시간에서 배어 나오는 또 다른 어떤 멋을 노년기에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나이 60이 되자 나는 앞으로 하지 않을 두 가지를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한 가지는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는 것, 또 한 가지는 얼굴에 색조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회사 경영을 통해 사회 활동을 하는 나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많이 만류했다. 염색을 하면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데 왜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때 든 생각은 ‘언제까지 내가 이처럼 젊어지려는 역방향 주행을 해야 하는가?’였다. 나 스스로를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하에 좀 편하게 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 보이는 것이 내가 늙어가면서 추구해야 하는 바른 목적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노년을 부정하기보다는 노년이 주는 노년의 아름다움을 갖고 싶다. 갓난아기가 갓난아기라서 아름답듯이, 또 청년은 청년이라서 아름답듯이, 노년은 노년이라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싶다.

나의 노년기에는 하얀 머리카락, 화장기 없는 맨 얼굴, 이런 자연미로 나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싶다. 하얀 머리카락은 노년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건강한 노년은 나의 목표가 될 수 있지만 젊음은 더 이상 내 노년의 목표가 아니다. 다시 오지 못할 나의 노년은 이미 지나간 나의 청년시절만큼이나 소중한 인생의 한 단락이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젊은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륜의 멋이 우러나오는 노년기에는 노년에만 가질 수 있는 노년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 보니 지금껏 시절 시절마다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의 노년 시절은 나의 지나간 시간들의 반성이 녹아 넉넉함을 낳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