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은 국민에게도 지급
소비 대신 저축…부양 효과 적어
취약계층 집중 지원이 바람직"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美서 커지는 '현금 살포' 회의론

‘대다수 국민에게 무차별 지원이냐, 취약 계층에 선별 지원이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처를 위해 긴급 예산을 편성할 때마다 벌어지는 논란이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 때 사실상 무차별 지원을 택했다. 지난해 3월 1차로 대다수 미국인에게 1인당 최대 1200달러(약 130만원)의 현금(재난지원금)을 줬다. 이어 지난달 5차 부양책을 통해 1인당 최대 600달러의 2차 현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거나 근로시간이 줄어든 미국인들을 돕기 위해서다.

1차 지원 때만 해도 경기 급락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무차별 지원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2차 지원도 거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데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자 기사에서 600달러의 현금을 받는 미국인 상당수가 이 돈을 소비에 쓰지 않고 저축하겠다는 분위기라며 현금 지원이 없어도 지장이 없는 국민에게까지 정부가 돈을 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금 지원을 실업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부었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소개했다.

2차 현금 지원 대상은 지난해 개인소득 8만7000달러(약 9500만원) 이하, 부부합산 소득 17만4000달러 이하 미국인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1인당 최대 600달러가 지급된다. 비영리단체 ‘택스파운데이션(Tax Foundation)’에 따르면 소득 하위 80% 계층은 99.9~100% 지원을 받으며 상위 20% 계층도 절반가량은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추정됐다.

[특파원 칼럼] 美서 커지는 '현금 살포' 회의론

실직이나 노동시간 감소로 임금이 줄어든 사람들에게 이 돈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부족할 수도 있다. 1차 지원 땐 4인 가족이 받는 돈이 최대 3400달러(어른 1인당 1200달러, 아이 1인당 500달러)였는데 이번엔 2400달러(어른·아이 1인당 600달러)로 줄었다.

반면 다수의 미국인은 이 돈이 없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미 노동부 통계를 보면 재택근무가 가능한 고소득·고학력층은 코로나19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오히려 보유 주식이나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을 늘린 사람도 많다.

NYT는 지난해 8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차 현금 지원을 받으면 소비에 쓰겠다는 응답이 15%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나머지는 저축이나 부채 상환, 투자에 활용하겠다고 했다. 1차 재난지원금 지원 후에도 미국의 가계 저축률이 지난 40여 년 새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 미국) 경제의 최대 문제는 소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이 소비 대신 저축을 하는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여행이나 유흥, 외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정부가 푼 현금이 소비로 흐르지 않고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은행 계좌에 쌓이면 재정의 경기 부양 효과는 반감된다. 저축이나 부채 상환 등에 들어간 돈도 길게 보면 언젠가 소비로 전환될 수 있지만 긴급 재난지원금의 취지엔 맞지 않는다. 즉, 재정이 엉뚱한 데 쓰이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대신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 지원액을 더 늘려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국가채무 증가도 무차별 지원의 단점이다. 미 연방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 3, 4월 네 차례의 부양책을 통해 2조8000억달러가량을 쏟아부었다. 여기에 지난달 5차 부양책 9000억달러를 포함하면 지난해 코로나19 대처에 쓴 돈은 3조7000억달러로 늘어난다. 2020회계연도 본예산(4조7900억달러)의 77%에 달한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1~4차 부양책만으로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방정부 채무비율이 2019년 79%에서 지난해 98%로 사상 최고치(1946년 106%)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어 이후에도 계속 높아져 2050년엔 195%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5차 부양책까지 포함하면 국가채무는 더 악화될 게 뻔하다.

대부분 경제학자는 이 같은 채무 증가는 미래 세대에 큰 짐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본다. 경제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미국처럼 기축통화국도 아닌 한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2000달러 현금 지원은 무산될 듯
미국 정치권은 2차 재난지원금으로 1인당 최대 600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데 이어 이를 최대 2000달러로 증액하는 법안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흥미로운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증액에 찬성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은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금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1월 5일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를 앞두고 현금 지원 확대가 득표에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린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반해 공화당은 국가채무 급증과 코로나19 백신 보급에 따른 경기 회복 전망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31일자 사설에서 이미 발효된 1인당 최대 600달러 현금 지원책을 위해 1657억달러의 예산이 책정됐으며 이를 최대 2000달러로 증액하려면 추가로 4638억달러(민주당 안) 혹은 3155억달러(트럼프 대통령 안)가 더 소요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부유층에까지 2000달러를 지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이끌고 있는 하원에서는 지난달 증액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어 증액안이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hohoboy@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