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600년 전 바둑돌
일본 왕실 보물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 보관 중인 초호화 바둑판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局)’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년)이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단나무 표면에는 가로·세로 19줄씩 상아로 상감돼 있고,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화점에 돌을 미리 놓고 두는 바둑) 규칙과 일치하는 17개 화점이 연꽃무늬로 장식돼 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바둑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예전보다 동호인 수가 줄었지만 2016년 실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선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22.2%(921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꼼수, 무리수, 묘수, 승부수’ 같은 바둑용어들이 일상 언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덤’을 얹어주거나, 직장 동료가 하는 일에 ‘훈수를 두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정치·사회 현상을 묘사할 때도 ‘착수, 수읽기, 포석, 국면’ 등의 기초 표현뿐 아니라 ‘대마불사(大馬不死)’나 ‘미생(未生)’ 같은 전문용어도 익숙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인공지능(AI) 시대 도래를 알린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한국에서 대국을 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바둑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바둑을 좋아했던 백제 개로왕을 노리고 고구려가 바둑고수인 승려 도림을 스파이로 파견한 장면(475년)이 기록돼 있다. 《고려사》엔 공민왕이 내기 바둑을 둔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에선 ‘금기서화(琴棋書畵)’라며 바둑을 선비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중 하나로 꼽았고, 부호나 세력가의 후원을 받으며 기량을 갈고닦은 프로 바둑기사 ‘국수(國手)’가 등장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조훈현 9단이 1988년 최초 국제기전인 ‘응씨배’에서 우승한 이래 이창호, 이세돌 등의 한국 기사가 연이어 세계 바둑계를 제패했다. 지금도 신진서, 박정환 등 한국기원에 등록돼 있는 현역 프로기사 377명(여자 70명)이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5세기 신라 왕실 여성의 무덤으로 보이는 경주 쪽샘지구 44호 고분에서 바둑돌 200여 점을 발굴했다고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남성들의 고분에서 바둑돌이 나온 적은 있지만, 여성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1600년 전 신라 여성의 바둑실력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한국인의 오랜 ‘바둑 사랑’을 입증하는 유물을 보며 묘한 상상을 해본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