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관료는 영혼이 없다지만…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은 영혼 있는 관료라는 평가를 받았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급해 관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회에서 “전 정부에선 감세안에 반대하더니 이 정부에서 찬성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의에 노회하게 넘어가며 던진 말이다. 요즘 장관들이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겠지만, 그는 ‘따거(큰형님)’라는 별명답게 “그래서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며 웃어넘겼다.

사실 관료가 영혼을 갖기란 쉬운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정권 핵심세력과 부딪치다 하차한 이헌재 전 부총리조차 그의 책(《위기를 쏘다》)에서 “관료는 기술자에 불과했다”고 썼다.

유독 이 정부에선 공무원의 영혼론이 자주 거론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정권 초 벌어진 ‘산업통상자원부의 과장 실종 사건’이 그 단초 중 하나였다. 전 정부에서 청와대 지시를 받아 공기업 인사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해당 과장은 어느 날 옷을 벗고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이른바 적폐청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를 옆에서 지켜본 공무원들은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몸 사리기는 극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해 세종청사를 방문해 첫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했지만, 이미 공무원들은 영혼이 탈탈 털린 상태였다. 이 정부에서 부역하면 정권이 바뀐 뒤 또 당할 텐데….

공무원들한테 주어진 선택은 복지부동, 아니면 이직 둘 중 하나였다.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한 간부들 사이에 유독 민간행이 두드러졌다. 최소 차관까지는 할 거라던 기재부 한 엘리트 국장은 “공무원에 넌더리가 난다”며 민간 기업을 택했다. 그가 떠나며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과거엔 정책 수요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 정책 방향을 정할 때는 밤샘 토론을 하며 치열하게 붙곤 했다. 이 정부 들어선 토론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죽은 공무원 사회에서 더 일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냐?”

남은 관료들도 자존감은 바닥이다. 정책 방향은 청와대가 정하고, 부처는 시키는 대로 실행하는 하청기술자라는 자조가 가득하다. 이런 공무원들은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

아예 대놓고 ‘영혼팔이’에 나서는 공직자도 적지 않다. 월성 1호기 정지 결정을 앞두고 “원전을 언제까지 가동할 것이냐”는 대통령 한마디에 경제성 수치까지 조작해가며 범죄행위를 저지른 공무원들은 가히 역대급이다. 감사원 현장조사 전날 밤 원전 관련 보고서 문건 444개를 삭제한 간 큰 공무원은 검찰이 ‘윗선’ 지시 여부를 캐묻자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공무원들이 일하는 부처를 찾아간 총리가 격려한답시고 “움츠리지 말고 소신을 갖고 일하라”고 한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다. 정권을 위해서라면 범죄행위도 서슴지 말고 저질러도 된다는 용기라도 북돋우겠다는 건가.

장관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몇몇 사안에 대해 각을 세우는 듯했던 홍남기 부총리도 대통령의 재신임을 확인한 이후론 다시 순한 양이 됐다. 정권의 지시를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른 ‘늘공’ 장관들은 지난주 개각에서도 비껴가 줄줄이 역대 최장수 장관 타이틀을 쥘 수 있게 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2년차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장·차관을 앞에 두고 얘기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은 아니다.” 말인즉슨 맞다. 하지만 홍 부총리를 비롯한 관료 장·차관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어느 누가 정권의 충복(忠僕)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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