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물류대란과 韓 해운산업 재건

물동량 급증에 운임 폭등, 배 못구해 수출기업 비상
HMM의 초대형 컨船 없었다면 '대란' 더 커졌을 것
쾌속·친환경·자동화 선박으로 선도자 돼야 살아남아
 [뉴스의 맥] 한국 해운산업이 '생존의 바다' 헤쳐나가려면…

최근 수출화물 운임이 급등하고, 선적 공간 확보도 어려워지면서 국내 수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미국행 선박이 부족하고 물류처리 시간도 지연되면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올 1분기만 해도 미주행 해상운송 운임은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500달러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4000~5000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27일 기준 2048.27을 기록했다. SCFI를 2009년 10월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고 수치다. 그나마 운임을 더 주겠다고 해도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차 선적 공간을 얻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해상 물류대란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물동량 급증을 꼽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 부양에 올인하면서 해상 무역 물동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재택근무와 가정학습 등 ‘집콕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가전제품 수요가 크게 늘었다. TV,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같은 생활가전은 시중에서 바로 구하기 힘들 정도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연말 블랙프라이데이 등 할인 수요도 폭발하고 있다. 중국에서 미국, 유럽으로 향하는 해상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는 배경이다.
코로나로 선박 줄이고 인력 감축 ‘후폭풍’
컨테이너 정기선은 일정한 양의 화물이 정기적으로 발생할 때를 기준으로 선적 공간을 배정·운영한다. 급작스런 물동량 변화에는 곧바로 대응할 수 없다. 지난 3월 코로나 팬데믹 발생 직후 국제 무역 거래량이 크게 줄어 컨테이너 정기선 선사들은 운항 선박을 30% 정도 감축했다. 선박 운영 스케줄도 대폭 줄여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그런데 여름부터 물동량이 치솟기 시작했다. 수출 화물이 일시에 항만 컨테이너 터미널로 몰려들면서 터미널도 적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컨테이너 터미널 특성상 수용 능력을 단기간에 늘릴 수 없고, 한 부분에서 적체가 발생하면 전체 터미널로 파급돼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물류 분야의 인력 감축도 빼놓을 수 없다. 항구, 터미널, 창고, 내륙 컨테이너 기지 등 모든 물류 관련 시설은 20~30% 인력을 감축한 채 운영해 왔기 때문에 물류 처리가 지체될 수밖에 없다. 종전에 비해 터미널 정박까지 5일, 컨테이너 하역에 5일, 컨테이너 픽업에는 1~2일 추가로 소요돼 LA 항만과 터미널에서 평소 대비 2주가량 지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내년 한국과 중국의 설 연휴 직전 대량의 밀어내기 물량을 다 처리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년에도 3% 정도의 선박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선박 공급 부족으로 인한 선적의 어려움은 쉬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뉴스의 맥] 한국 해운산업이 '생존의 바다' 헤쳐나가려면…

우리나라는 그나마 HMM(옛 현대상선)이 신조한 2만4000TEU급(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이 올해 모두 건조, 투입된 효과를 보고 있다. 이 12척이 유럽 노선에 투입되면서 기존 유럽 노선을 운항하던 1만3000TEU급, 1만1000TEU급, 8000TEU급 선박을 미주 노선으로 돌릴 수 있었다. 기존 미주 노선에 운용하고 있던 선박에 추가한 선적 공간이어서 현재의 어려움이 많이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박 없이 외국 컨테이너선에만 의존했더라면 한국 무역업계는 한진사태 때에 버금가는 물류대란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신조선 덕분에 HMM은 올 3분기 영업이익 약 2771억원, 연간 영업이익이 8424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상선은 2010년 570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이후 2011~2019년 9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3조8426억원에 달해 소생 가망이 없어 보였다. 획기적인 조치 없이는 한국의 원양정기선 해운은 한진해운에 이어 현대상선까지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형 컨테이너선 20척 건조라는 국가적 대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한국, 대형 컨船 20척 건조로 위상 높아져
그동안 선복 과잉과 한정된 국가재정의 편중 지원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외국 선사와 연구소들은 이미 심화된 선복(화물 적재공간) 과잉을 더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의 편중 지원과 HMM의 마케팅 능력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힘에 부치는 대형선을 일시에 건조하기보다 한두 척씩 기간을 두고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정기선 운항에 필수적인 ‘얼라이언스’ 가입은 우리의 존재가 위협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느 얼라이언스도 한국에 자비를 베풀 곳은 없다. 얼라이언스는 가입된 선사끼리 투입된 선박을 공동 운항하고 선적 공간을 서로 나눠 사용한다. 마케팅 부담을 나누며 여유 선박으로 더 많은 항로를 서비스할 수 있다.

HMM이 동서항로 서비스를 위한 12척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과 8척의 1만6000TEU급 선박 건조를 주문하면서 얼라이언스에 가입이 안 될 경우 독자 운항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했다. 그러자 한국의 존재가 세계 해운업계에 현실적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이 우리의 얼라이언스 가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제는 얼라이언스에 가입된 모든 선사가 국내 대형 신조선의 선적 공간을 공동으로 이용하며 우리 신조 대형선이 만들어 내는 10% 이상의 원가 경쟁력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얼라이언스가 서비스하고 있는 남미, 중동 지역까지 서비스 영역을 넓혀 국내 화주에게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현재의 컨테이너선 대형화는 2016년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가 주도했다. 머스크는 당시 대우조선해양에 일거에 12척의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을 주문했다. 당시 획기적인 적재 능력과 그에 따른 TEU당 원가 경쟁력을 구현하고, 16노트 정도의 저속에 알맞은 경제적 엔진과 환경친화적 설비 등 시대를 앞서가는 전략으로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 후 모든 선사가 대형화에 사활을 걸게 됐다.

그런데 5년 뒤는 어떨까. HMM은 여전히 흑자를 낼 수 있을까. 머스크가 대형화에 올인했을 때 같은 획기적인 전략을 내놓지 않는다면 다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아마존 등 글로벌 유통기업은 이미 종합물류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필요한 운송업자를 선별해 독자적인 공급망(supply chain)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제는 어느 공급망에 속하느냐가 운송업자의 존립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기술 통한 혁신은 생존의 문제
이런 공급망 구조에서 해운의 현재 운항 속도는 너무 느리다. 항공운송 비용은 너무 비싸다. 항공운송보다 저렴하면서도 현재의 해상운송보다 빠르고 대량 운송도 가능한 수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때 월남전 군수품 운송을 맡았던 미국 시랜드는 34노트 속도로 미국 롱비치항에서 베트남 다낭까지 운송한 적도 있다. 우리도 현재의 16노트에서, 속도를 끌어올려 27노트 정도로 운항하면 부산~롱비치 노선을 1주일 만에 주파할 수 있다.

적정 규모의 컨테이너선을 환경친화적이고, 완전 자동화한 차세대 선박으로 건조해 투입한다면 한국은 비로소 추종자에서 선도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화, 인공지능(AI), 자동화 등 신기술을 통한 혁신을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속도→대형화 경쟁으로
리먼 사태 후 유가 올라…초대형 선박이 경쟁력, 선사도 M&A로 대형화
2000년대 해운업의 패러다임은 ‘속도 경쟁’이었는데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유가가 상승하면서 ‘선박의 대형화’로 패러다임이 변했다. 유가는 선사 매출 원가의 15~30%를 차지하기 때문에 선사의 원가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속도의 경우 속도 상승분의 3제곱에 해당하는 연료유를 소모하기 때문에 운항 원가에서 운항 속도와 소모되는 유류 비용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2010년 이후 컨테이너선은 대형화 추세가 가속화됐다. 2010년 1만TEU급이 불과 40척이었는데 2014년에는 1만TEU급 이상 선박이 196척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2019년에는 1만TEU급 이상 선박이 523척으로 9년 사이 13배 증가했다. 급기야 2만3000TEU급까지 건조돼 시장에 나오게 됐다. 현재는 1만TEU급 이상 대형선이 전체 시장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초대형 선박은 운송가능 능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연료유 사용량은 크게 늘지 않고 선원비, 선용품비 등 운항 관련 비용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적재할 수 있는 컨테이너 수를 감안할 때 TEU당 원가가 크게 절감돼 그만큼 원가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초대형선을 보유하지 못한 선사들은 극심한 운임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다른 선사에 인수합병(M&A)됐다. 이런 M&A를 통해 상위 선사들은 대형화됐고 중국, 일본 선사들은 전략적으로 자국 선사 간 통합을 거쳐 대형화의 길을 택했다. 현재는 상위 7개 선사가 선복량 1720만TEU로 시장 점유율 75.6%를 차지하는 과점 상태여서 그만큼 시장 대응 능력이 개선됐다.

한국의 HMM은 2016년 회생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력이 약화되고 최대 선형은 1만3100TEU로 초대형선 경쟁에서 뒤처진 상태로, 선복량도 42만TEU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8년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 HMM은 기존 선복량에 신조선을 더하면 2020년에 75만TEU, 2022년에는 100만TEU를 확보하게 돼 글로벌 메이저 선사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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