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재닛 옐런과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한국은?
내년 1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요 직책에 대한 인선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 내정자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이어 여성 첫 재무장관이라는 화려한 이력뿐만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워진 미국 경제를 어떤 처방으로 구해낼 것인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복잡한 현실을 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차가 길고 논리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경제정책일수록 더 어렵다. 이 때문에 특정 경제이론에 의존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했던 종전의 정책 처방을 참고로 하는 방법이 많이 활용된다. 평가의 준거 틀로 삼아왔던 여러 정책 처방 가운데 옐런 재무장관 내정자가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연설했던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주목받고 있다. 예일 패러다임의 주창자는 예일대에서 화폐 경제학을 가르쳤던 제임스 토빈이다.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 정부 시절에 실행됐던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재닛 옐런과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한국은?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 침체, 위기 극복 등과 같은 단기 과제 해결은 케인지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및 완전고용 등과 같은 장기 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인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다. 즉, 단기 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혹은 IS/LM) 곡선으로 이해하고, 지속 가능 성장과 고용 창출 등의 장기 과제는 토빈과 로버트 솔로 모델을 선택했다.

정책 수단은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이 더 유용하다고 봤다. 이 때문에 재정정책은 경기 부양을 위해 일시적으로 적자 폭이 커지더라도 ‘재정 건전화’ 틀은 깨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물가가 어느 선을 벗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경제 활력을 북돋는 데 바람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종 목표인 장기성장과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고, 통화당국은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해 기업 이윤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제도 투자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세율을 높여 저축과 투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예일 패러다임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토빈 교수가 케네디 정부에 정책 자문했던 1961년 이후 106개월 동안 확장 국면이 지속됐다. 1990년대에는 예일대 교수들이 다시 클린턴 정부와 손잡으면서 확장 국면이 2001년 3월까지 120개월 동안 지속됐다.

예일 패러다임은 미국 이외 국가에서도 활용됐다. 1990년 이후 ‘엔고(高)의 저주’에 걸려 20년 이상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교수의 발권력을 통한 엔저 유도 권고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30년’ 우려를 차단한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예다. 고이치 교수는 토빈의 제자이다.

예일 패러다임대로 바이든 시대 추진될 경제정책을 예상해 보면 거시 기조는 ‘분배’보다 ‘성장’, 목표는 ‘물가 안정’보다 ‘고용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는 가운데 운영 방식은 ‘준칙’보다 ‘재량적’ 방식, 시장과의 관계는 ‘우월적’보다 ‘친화적’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비중은 후자에 무게를 두되, Fed와의 협조를 중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는 재정지출은 늘리고 통화정책 기조는 보수적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추경을 네 차례나 편성했다. 반면 통화정책은 코로나 사태 직후 두 차례 금리를 내리긴 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적극적이지 못하다. ‘재정 건전화’와 ‘금융 완화’ 간 조합을 기본 토대로 하는 예일 패러다임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하루빨리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과 함께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보다 과감하게 금융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 여건상 예일 패러다임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면 기준금리는 0% 내외로 내리고, 유동성 조절정책은 최소한 ‘타기팅 양적완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