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치적으로 소모되는 AI와 과학기술
바른 과학기술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 지난 24일 “정치가 과학을 뒤덮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성명을 냈다. 김해 신공항 타당성 조사가 4년 만에 뒤바뀌고,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공학기술의 상식적 범위를 벗어났을 수 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실연은 “대형 국책사업에서 정치가 과학을 덮는 것은 국가적 재앙을 예고할 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 돌이킬 수 없는 짐을 떠안기는 무책임한 일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국책사업뿐 아니라 일상적인 과학기술 행사도 정치에 자주 동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AI)을 만나다’란 행사를 찾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자리다. 전날 법무부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직무를 정지해 논란이 일던 차다.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대통령의 모습을 두고 여론이 들썩였다. ‘이 상황에서 또 숟가락 얹기냐’란 지적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루닛 등 민간 기업이 올린 성과를 읊었을 뿐 새로운 아젠다를 내놓지는 못했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을 한다며 지난 6월 강원 춘천을 시작으로 이번에 여덟 번째로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산업 현장을 방문했다. 7월 전북 부안, 9월 경남 창원, 10월 인천과 울산 등 거의 매달이었다. 이를 두고 대전 연구단지의 한 직원은 “과학기술로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심어 부동산 문제 등 여러 비판을 희석시키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 뉴딜은 차기 대선이 있는 2022년까지 AI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23조원을 들여 약 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모든 부처의 R&D 과제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해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였다는 평가가 많다. 어디든 AI,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을 내세우면 R&D 자금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중소기업, 초중고교·대학, 병원, 소상공인, 지방자치단체 등 예외가 없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현실 정치로 통합한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니코스 풀랑저스는 “국가는 피지배층을 분열시키면서 지배권력 블록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재생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순응을 확보하기 위해 계급마다 경제적·이데올로기적 대가를 충분히 지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솔깃한 이름의 사업인 ‘디지털 뉴딜’을 내세워 R&D 자금을 확대 살포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런다고 문 대통령이 25일 밝힌 ‘국민 모두가 인공지능으로 행복한 나라’가 될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주택값이 실현되고 세금 폭등이 예고된 현재는 적어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