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현의 논점과 관점] 故 박원순 전 시장의 뼈아픈 실책
정부가 ‘전·월세 대란’을 잡기 위해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는 숫자놀음으로 가득하다. 단기에 총 11만4000가구의 전세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급 예정 물량을 끌어모았다.

그런데 이 ‘영혼 없는’ 자료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내년부터 2년간 공급동향(3쪽)을 분석하면서 서울의 경우 연평균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8만 가구)보다 17.5% 감소한 6만6000가구에 머물 것으로 내다본 부분이다.

그 이유로 ‘2016년 정비사업 인허가 축소’를 들었다. 재건축, 재개발 같은 정비사업은 인허가 후 입주할 때까지 5년가량 걸린다. 이를 고려해 2016년 인허가 물량(7만4739가구)이 전년에 비해 26.1% 줄었던 게 내년, 후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전세대란, 박 전 시장 유산"

이 대목에서 누군가 4년 전 서울 정비사업의 인허가를 책임졌던 박원순 전 시장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의 전·월세난이 서울 핵심지의 ‘매물 절벽’에 임대차법이 더해져 주변으로 확산된 것임은 대부분 인정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은 재임기간(2011~2020년) 내내 “강남 등 핵심지 정비사업은 주변 집값을 자극하기 때문에 허가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이런 생각으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강남구 은마아파트 등 강남권 랜드마크 단지들에 대해 집요하게 ‘재건축 불허’ 입장을 고수했다.

일부러 사업을 지연시키는 일도 잦았다. 종로구 사직2구역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하자 구역 내 캠벨 선교사 주택을 지난해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해 ‘알박기’ 논란을 일으켰다. 노포(老鋪) ‘을지면옥’의 보존 여론이 일자 1년 이상 사업을 지연시킨 뒤 결국 대부분의 정비구역을 해제한 세운지구도 있다.

이번 정부에서 무주택자들의 주거 불안이 극심해진 데엔 중앙정부의 ‘반(反)시장 헛발질’ 영향이 컸다. 그러나 “서울에서 공급을 틀어막은 박 전 시장 지분이 절반 이상”(인터넷 논객 ‘삼호어묵’)이라는 사람도 상당수다.

'서울 수성' 與, 정책전환해야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이 ‘아킬레스건’을 놔둘 리 없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동산’을 핵심 아젠다로 삼을 뜻을 분명히 했다. 여론도 심상치 않다. 서울에서 박 전 시장이 3선을 했고, 2018년엔 24개 자치구를 여당이 싹쓸이했다. 그런데도 최근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하는 흐름이다. 전·월세 대란이 극에 달했던 10월 둘째주(12~16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서울 지지율 28.9%로 국민의힘(34.5%)에 오차범위를 넘어 역전당하기도 했다.

물론 보선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3차 대유행에 접어든 코로나만 해도 여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변수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건 없다. 더구나 내년 선거전이 한창일 시점은 이사철이다. 174석 거대여당이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싸우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쯤 되면 선거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갖은 핑계를 대며 고수해온 ‘외골수 주택정책’까지 대전환할 용기가 있을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마당에도 의원들 사이에 “임대 비율을 20%로 올리자”(우원식)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를 도입하자”(김성환)는 발언이 쏟아지는 걸 보면 그럴 리는 없을 듯하다. 어떤 결정을 하건 결과는 표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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