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금감원은 자본시장 파괴자인가
‘희대의 펀드 사기극’으로 드러난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책임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사기극을 벌인 장본인들일까, 아니면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판매한 금융사들일까. 도긴개긴이지만, 이들보다 더 큰 책임은 금융당국, 그중에서도 금융감독원에 있다.

금융시장 종사자들에게 아무리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선관의무)를 강조해도 돈을 좇는 그들의 생리상 도덕의식이란 게 평균적으로 높지는 않을 것이다. 모험자본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허문 금융위원회에 언론이 화살을 돌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정부로선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감독당국이다. 2000명에 육박하는 매머드 조직을 거느린 금감원이 직원 평균 연봉 1억원에 걸맞은 역할만 제대로 했다면 라임·옵티머스의 일탈은 사전에 제어됐거나, 최소한 지금처럼 사태가 커지진 않았다.

하지만 금감원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시장을 파괴하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첫 번째는 부실을 사전에 감지하고도 방치한 잘못이다. 라임의 ‘펀드 돌려막기’는 이미 작년 초부터 여의도 증권가에 소문이 파다했다. 금감원도 수차례 제보를 받아 인지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국경제신문의 최초 보도(작년 7월 22일자)가 나간 후 한 달여가 지나서야 겨우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발표는 하염없이 미뤄졌다. 급기야 올 초에는 사기극의 주역들이 코스닥 기업을 통해 투자자들의 돈을 빼돌리는 일까지 벌어졌는데도 금감원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부실을 키우는 데 일조한 셈이다.

그런 금감원은 문제가 터지자 이번엔 완전히 번지수가 잘못된 해법을 내놓았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소비자 책임은 제로, 판매사 책임은 무한대’라는 결론을 짓고 “원금 전액을 물어주라”고 금융사 팔 비틀기에 나섰다.

소비자 보호야 금감원의 당연한 첫 번째 과제이지만, 이게 맹신으로 치달을 때 어떤 부작용을 낳고, 그 피해가 어느 쪽으로 귀결될지는 금감원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당장 은행들은 사모펀드를 더 이상 판매하지 않겠다고 속속 두 손을 들고 있다. 사모펀드의 절반을 판매하는 은행이 포기하면 중소형 운용사들은 잇따라 문을 닫을 것이고, 자본시장의 꽃이라고 하는 사모펀드는 고사위기에 처할 것이 뻔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금감원이 책임을 지우겠다며 며칠 전 발표한 최고경영자(CEO) 중징계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중징계 이유는 ‘내부 통제 부실’인데, 그렇다면 감독을 게을리한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통제 부실은 뭔가. 심지어 금감원 직원들은 펀드 부실에 공모한 혐의까지 받는다. 청와대에 파견나간 전 금감원 팀장은 라임사태의 핵심 세력과 내통하며 금감원의 검사계획 문건을 넘겨주는 대담한 범죄까지 저질렀다. 옵티머스 사태에선 금감원 전 고위 간부가 직접적으로 사기에 가담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이를 통제하지 못한 윤석헌 원장 역시 최소 직무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윤 원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책임 추궁에 “펀드 감독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금융위에 예속돼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동문서답을 늘어놨다. 금융사에 대한 감독권과 조사권, 제재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 간섭이 심해 제대로 감독을 못 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이런 황당한 논리가 어디 있을까.

오히려 방만 운영과 감독 해태를 못 하도록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일거수일투족을 정부 감시 아래 둬야 한다는 게 시장의 정서다. 오죽하면 “금감원 개혁 없인 금융시장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올까.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