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트럼프주의 심판받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낙선했다. 1900년 이후 다섯 번째로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의 분열적 행동과 혼란스러운 국정운영에 다수의 국민이 피로감을 호소했다. 민주적 제도와 가치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유권자로부터 정치적 단죄를 받았다. 즉흥적이고 무분별한 국정수행이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 임기 내내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해 안정된 통치 기반 구축에 실패했다. 좌충우돌식 행보는 한 편의 리얼리티 쇼를 연상시켰다. 신중한 정책 결정 대신에 지지층을 열광시키는 대규모 정치집회와 이벤트에 치중했다. 혼돈의 리더십은 초강대국 미국을 3류 국가로 전락시켰다. 백악관 비서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이 네 번 교체됐다. 국토안보부 주요 보직 70개가 아직도 미충원 상태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1040만 명, 사망자 24만 명이라는 국가적 대재앙이 초래됐다. 미국 예외주의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분열과 증오의 정치가 워싱턴의 뉴노멀이 됐다. 흑인 등 소수인종과 이민자를 경멸하고 신체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폄하했다. 미국인의 자존심인 군인의 명예를 훼손했다. 베트남 전쟁 영웅인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공격이 단적인 예다. 경합주 애리조나에서 패배한 주요 요인의 하나다. 2000만 명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 오바마케어 폐기를 집요하게 시도했다. 흑인의 87%가 조 바이든에게 몰표를 던진 배경이다. 국민의 통합 대신 극단적 편가르기로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적 행태가 트럼프주의의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자유, 법의 지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부정했다.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 주장처럼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recession)를 초래했다. 민주적 다원주의와 보편주의를 공격하고 탈(脫)민주주의 정서를 확산시켰다. 스스로를 ‘선출된 독재자’로 생각해 미국판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행동했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품위와 도덕성을 외면했다. 여당인 공화당은 트럼프의 전횡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편승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정상적 국정운영이 실종되면서 미국이 실패 국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스트벨트 패배가 결정적이었다. 트럼프는 2016년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에서 7만8000표 차로 신승했다. 바이든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서민적 이미지와 포용적 자세로 백인 근로자 표심 공략에 성공했다. 러스트벨트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약속했던 제조업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실질소득 향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코로나 확산 직전인 2월 대비 약 1000만 명이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27주 이상 실업 상태에 있는 근로자가 360만 명에 달한다. 2017년 감세에 따른 혜택은 대부분 상위 10% 계층에 집중됐다. 주가 상승의 과실도 고소득층의 몫이었다. 상위 10%가 상장 주식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고 절규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촉발했다. 흑인의 높은 투표율을 견인했다. 디트로이트시 흑인 투표율이 바이든의 미시간주 승리를 결정지었다.

트럼프주의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7100만 표 이상을 얻었다. 백인 근로자 계층의 탄탄한 지지를 확인했고 히스패닉 표심도 파고들었다. 전후 공화당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비백인 표를 얻었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206개 카운티 중 19개만이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10개 주 가운데 9개를 석권했다. 8730만 명의 트위터 팔로어가 존재한다. 트럼프주의가 공화당의 미래라는 말이 널리 회자된다. 데이비드 브라이트 예일대 교수는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트럼프주의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치는 지지층을 열광시켰으나 보다 나은 사회 건설에는 실패했다. 이번 대선은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미국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부정한 트럼프 포퓰리즘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